[복실이에게 보내는 편지]

ep10. 산책

by 하투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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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어느덧 수능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모든 시험이 끝났죠. 그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단 하루의 시험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을 먼저 느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건 [복실이]였습니다. 아직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이였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와 함께 동네 한바퀴를 돌 생각으로 밖에 나갔습니다.

항상 [복실이]와 함께 걷던 길이었지만, 그 날은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인 것 같앗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기를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서 졸랑졸랑 걸어가는 [복실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복실이]는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 와서 안아달라고 낑낑거렸습니다. 목이 말랐을 수도 있고, 다리가 아팠을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왠지 나에게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동네를 다시 한 바퀴 돌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이 퇴근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험 결과를 물으시고는 답도 듣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죠. 잠시 후,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밥 먹을 때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아서 유난히 조용한 편입니다. 어린 시절, 식사 도중 아버지에게 질문을 했다가 혼난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밥을 남겨서 혼난 적도 있었고, 또 편식한다고 혼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실이]가 온 뒤로는 한 번도 밥 먹다가 혼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죠. 다만 지금도 그 변화의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님께 물어봐도 그 이유를 모르시니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복실이]는 우리 집의 분위기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표현을 잘 안 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나 역시 집에서는 무뚝뚝한 편이었기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가 많지 않았죠. [복실이]가 온 이후에도 여전히 대화는 많지 않았지만, 사람 사는 듯한 소리는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부모님께서 [복실이]에게 표현하는 모습은 참으로 낯설었습니다. 나에게는 거의 하신 적 없는 말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것이 전혀 서운하지 않았죠. 바뀐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가 표현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마 그 덕분에 나의 메마른 감정에도 조금씩 물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내내 인기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여자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외모를 가꾸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죠. 그때는 고백도 많이 하고, 차이기도 많이 차였습니다. 그나마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외모에 관심을 가진 덕분에, 조금씩 사람다운 외모를 되찾을 수 있었죠. 또한 [복실이]와 함께 지내는 동안 감정 표현에도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나름대로 즐거운 대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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