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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흘살기 전문가 Jun 13. 2024

4. 아포가토 한 잔과 쌀국수 한 그릇,  굿바이 코나

빅아일랜드 코나_UCC 커피농장 아포가토

빅 아일랜드에는 가장 큰 도시인 서쪽의 코나와 그다음으로 큰 도시 동쪽의 힐로가 있다. 두 도시는 각각 공항까지 갖추고 있어서 관광객들은 어디부터 가야 할지 한 번씩 고민에 빠진다. 우리는 코나 In- 힐로 Out으로 결정했고 오늘은 코나에서 힐로로 넘어가는 마지막 날이자 미국의 최대명절인 크리스마스다. 미리 절반가량 짐을 둔 덕분에 새소리를 들으며 코나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여유를 부리며 즐겼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코나에서의 마지막 일몰 안녕"

아침날씨는 구름이 해를 잔뜩 가려 곧 비가 쏟아질 듯이 날이 흐렸다. 전 날 숙소에서 보았던 일몰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분주했던 한국과 다르게 느리게 시간이 가는 하와이의 아침이 마냥 신기했다. 그때까지는

일찍 서둘러야 코나를 더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아이들을 깨우러 갔다. 보통 몇 번을 불러야 일어나는 둘째가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 달려가는 게 어쩐지 수상해서 이불을 걷어보니 OMG 비상이다. 전 날 스노클링을 실컷 하고 저녁에 물 종류를 많이 마시더니 2살 때 이후로 실수를 한 적이 없었는데 침대에 오줌을 싸버린 게 아닌가!


여행 가면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호텔이나 펜션에서 이불까지 배우고 말끔히 치우고 나온다. 해외 나가면 한국인 이미지에 긍정 한 스푼 더해주고자 뒷정리도 말끔히 하는데 미국의 에어비앤비 집에서 오줌을 싸다니. 그것도 체크아웃 날인 오늘이라니!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침대시트 얼마일까, 아니 매트리스까지 물어줘야 되나 생각하며 시트를 마구 걷어보니 다행히도 집주인이 두꺼운 매트리스 비닐을 씌워두었다.


하늘이 도왔다! 


재빨리 욕조로 달려가 손바닥 지문이 닳아지도록 세제에 비벼 애벌빨래를 하고 바로 앞 차고의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돌렸다. 만약 새하얀 시트에 자국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다 물어주고 갈 생각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당일이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전 날 늦게까지 파티를 하느라 늦게 잤으니 우리로 인해 깨우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다 큰 애가 실수를 한 게 화가 나서 복화술로 화를 냈다.

"오늘 떠나는 날인데 이게 뭐니, 누가 그러게 음료수를 자기 전에 그렇게 마시래" 


건조기에서 다 되었다는 땡 하는 효과음이 나기까지 시간이 더디갔다. 애벌 빨래를 열심히 한 덕분에 아까보다 더 새것처럼 하얗게 건조까지 되어 나온 빨래를 네모반듯하게 개워 침대 위에 접어놓으며 집주인에게 3일 동안 이 집에서 묵어서 행복했노라 Thanks To 메시지를 남기며 집을 떠났다.




   


세계 3대 커피로 유명한 코나커피를 꼭 마지막날에는 꼭 마시리라 다짐했다. 빅 아일랜드에는 헤븐리, 코나조, UCC 등 커피 농장과 함께 있는 카페가 유명한데 원래는 뷰가 좋다는 코나조 커피농장으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숙소에서 힐로 가는 길에 있던 UCC에 나도 모르게 차를 세웠다. 여행을 하다 보면 꼭 일부러 찾아가는 것보다 즉흥으로 가는 것도 재밌으니까. 아이들에게 커피열매를 보여주고 젠틀한 커피 마스터 분이 설명해 주는 커피 이야기를 들으며 시음커피를 여러 잔 맛봤다. 향과 맛이 예술인 코파커피를 이곳에서 선물용으로 몇 개 구입했다.


아메리카노는 원두마다 맛을 보여주어서 UCC카페 메뉴판에는 없지만 아포가토를 맛보기로 했다. 아는 사람만 시킨다는 아포가토는 잠시 넉다운이 되어버린 정신을 달콤하게 충전시켜 주기 충분했다. 보통 뷰가 좋다는 코나조를 많이들 가는데 아포가토 맛보러 UCC방문도 추천한다.   


 타이 음식점에서 쌀국수와 팟타이를 점심으로 먹었다.

배가 많이 고프진 않은데 휴게소가 없는 미국인지라 구글로 pho 검색해서 코나 시내로 왔다. 인상 좋은 타이 아저씨가 만들어준 쌀국수 국물이 얼마나 진하던지. 휴게소 대비해서 먹어둬야 듯해서 왔는데 국물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드링킹 했다. 코나를 떠나기가 내심 섭섭했는데 쌀국수 국물로 배를 채워서일까? 아쉽지만 코나와는 안녕.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코나는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다시 힐로로 출발! 코나에서 힐로는 두 시간이 걸린다. 잠깐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먹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올 것 같다. 코나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힐로로 곧장 출발했다. 가는 동안 날씨는 화창하다 먹구름이 끼었다가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가 열두 번이 바뀌는 가운데 고속도로 옆에는 펜스 없이 말, 양, 닭 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강풍까지 불어 운전 난이도가 상이다.


행여 동물이 차 앞으로 뛰어들까 봐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곳곳에 동물 사체가 있는 거 보니 속도가 높은 고속도로에서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이들이 잠들어서 보지 못해 다행이었다.


장시간 홀로 운전을 하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니 아침에 아이에게 화낸 것이 못내 미안했다. 아이와 여행을 하면 생각지도 않았던 변수가 종종 생기는데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화내지 말고 조금만 참을 걸. 그러면서도 아이니까, 아이라서 금방 잊어주기를 바라는 건 큰 욕심인 듯하다.


다음 날 힐로에서 아이는 야무지게 엄마에게 되돌려주었다. 힐로 화산국립공원 초입에 미술관을 먼저 둘러보며 아이들이 선호하는 그림이 궁금해서 하나씩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고 하였다.





둘째가 고른 그림이 특이해서 "하하하, 이게 마음에 들어?" 묻자

"아니, 엄마 아침에 화낼 때 모습이랑 똑같아서"


"....."


굿바이 코나

반가워 힐로


힐로에서는 화내지 않기. 여행 가서는 꾹 참아야 한다고 이 그림을 저장해 두었다. 엄마 노릇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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