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길 - 경제학은 어떻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강국 옮김, arte 2025.
원제: The Road to Freedom: Economics and the Good Society
아래의 글은 위 책의 번역자가 책 말미에 쓴 ‘해제’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좋은 사회를 향한 자유의 길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지난 겨울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심각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연설에서 여러 번 자유를 강조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고 결국 탄핵당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정책에서도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축소하여 소수의 자유를 확대한 반면 수많은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한국에서 우파는 오랫동안 자유가 정치적으로 주로 반공을 의미하고 경제적으로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자유의 개념으로 이제 진정한 자유의 의미와 그것을 확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좋은 사회를 위한 경제학
스티글리츠 교수의 <자유의 길>은 바로 그런 분석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21세기 경제학의 관점에서 자유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고 어떤 경제체제가 시민들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지 논의합니다. 저자는 자유를 기회집합과 관련된 행동의 자유로서 공평, 정의 등의 가치와 연관된 확장된 개념이며 잠재력을 실현하는 자유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우파가 자유라는 단어를 독차지하고 오도하여 감세와 규제완화 등을 통해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고삐풀린 시장과 신자유주의를 낳았습니다. 이 체제는 소수의 자유를 확대했지만 성장의 정체와 불평등의 심화, 경제불안정을 낳아 수많은 이들의 자유를 축소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시민들의 자유를 확대하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적 역할과 권력의 균형에 기초한 진보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이 책은 먼저 1부에서 트레이드오프, 외부효과, 공공재, 조정 문제 등 경제학의 표준적 분석을 통해 자유와 강제에 관해 살펴봅니다. 상호의존의 세계에서 한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부자유가 될 수 있는데 이는 기후변화와 같이 현대 경제에 만연한 외부효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자는 무임승차문제를 고려할 때 정부의 규제와 같은 강제가 더 효과적으로 외부효과를 해결하고 자유를 증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신호등과 같이 집단행동이 공공재를 제공하거나 조정 문제를 수월하게 하는 경우도 강제가 자유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공공투자를 확대한다면 모든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자유를 확대할 것입니다. 1부는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확대하는 바람직한 사회계약에 관해 논의하고 재산권의 역사와 의미를 검토하여 시장소득의 도덕적 정당성이 얼마나 취약한지 설명합니다. 나아가 현재의 자본주의는 독점과 착취문제, 그리고 권력의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에 독점의 규제와 대항권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2부는 사람들의 믿음과 선호가 변화한다는 행동경제학의 통찰에 기초하여 자유에 관해 논의합니다. 저자는 또래압력과 규범의 역할을 살펴보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환경 자체가 이기심을 조장하고 신뢰를 약화시켜 자본주의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개인을 형성한다고 비판합니다. 한편 기업들이 고객을 착취하며 플랫폼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허위정보를 유포하여 정치를 왜곡하는 현실에서 정부의 규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사회규범 중에서는 사람들이 믿음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용이 자유를 위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3부는 어떤 경제체제가 더욱 평등하고 협력적이며 관용적인, 좋은 사회를 만들 것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신자유주의는 외부효과, 공공재와 조정실패, 거시경제 변동, 불평등 같은 시장실패에 대해 시장에 맡기라고만 제언했고 결과는 나빴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규제와 경쟁 촉진, 세금에 기초한 공공투자, 그리고 불평등의 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진보적 자본주의입니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더욱 정의로운 국제적 경제 구조의 확립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신자유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며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부와 권력의 집중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게 진보적 자본주의를 확립하는 노력이 시민들의 실질적 자유를 확대하고 활기찬 민주주의에 기초한 좋은 사회를 가져올 것입니다. 현실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모자랐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포퓰리즘이 발흥했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기초하여 저자는 자유시장이 효율적이고 시장의 소득분배가 정당하다고 주장한 프리드먼과 하이에크의 우파 경제학을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시장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정부의 개입은 노예의 길이 아니라 자유의 길이라는 이야기지요.
자유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과 현대 경제학의 방대한 연구에 기초하여 조세와 공공투자 같은 정부의 역할이 자유를 확대할 것이라는 이 책의 논의는 이론적·실천적으로 커다란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재산권의 문제를 제기하고 시장에서 소득분배의 정당성을 비판하며 권력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은 기존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의 길을 밝히는 진보적 자본주의를 제언하는 이 책의 결론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이 얻은 교훈은 긴축과 불평등이 경제에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논의가 더욱 발전되어야 할 지점들도 있습니다. 먼저 현실에서 정부도 관료주의나 규제의 비효율성, 그리고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와 같은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큰 정부가 아니라 유능하고 깨끗한 정부이며 이를 위해 공공부문의 개혁과 함께 정부와 시장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할 것입니다. 정부의 힘이 상대적으로 컸던 한국에서 이는 더욱 중요한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저자도 지적하듯 정부의 실패를 막기 위해 참여민주주의가, 그리고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를 통해 부패를 억제하고 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한편 이 책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강력한 이론적 비판을 제시하지만 미국 경제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해 보입니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금융규제가 완화되었지만 규제가 늘어난 부문들도 여럿 있었고 고소득층의 세금부담이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됩니다. 또한 시장소득의 분배는 악화되었지만 정부의 복지지출이 증가하여 소득재분배 기능은 확대되었습니다. 정부개입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40년간 벌어진 현실의 변화가 단순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팬데믹 이후에는 산업정책과 보호무역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반대로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입장에서 재정확장과 공공투자를 실행했던 바이든 정부 이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진보적 자본주의가 현실에서 정치적으로 선택받기 위해 구체적인 모습과 정책에 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
한국인들은 대통령 탄핵으로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를 지켜냈지만 일부 극단적인 우파는 탄핵을 반대했고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이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진정한 자유의 확대를 위해 어떤 경제체제를 지향할 것인지 고민하고 논의를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려 했던 윤석열 정부는 경제적으로도 시민들의 자유를 억누르는 정책을 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주도경제를 추진하며 감세와 재정긴축을 통해 부자와 대기업의 자유를 확대했지만 낙수효과는 없었고 경제가 악화되어 많은 시민들의 자유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음 정부는 이와 반대로 증세와 적극적인 공공투자를 통해 시민의 실질적인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여전히 노인빈곤율이 선진국에서 가장 높고 청년들이 삶의 불안으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또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독점을 규제하고, 정치적·경제적 양극화를 막기 위해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의 최근 경제정책 기조는 감세를 촉진하는 등 보수적인 방향을 지향하고 있어서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한국은 소득 상위 20퍼센트의 고소득층, 혹은 상위중산층의 실효근로소득세율이 온갖 공제들로 인해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광범위한 증세와 사회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재분배의 강화, 그리고 산업정책을 위한 정부의 공공투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제도 스티글리츠 교수의 제언처럼 정부가 외부효과와 조정문제 해결을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경제를 관리하는 진보적 자본주의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이러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권력의 균형을 만들어 내고 경제의 규칙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새로 쓰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월에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앞날을 둘러싸고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바람직한 경제정책과 경제체제의 방향에 관해 깊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유의 길을 밝히는 진보적인 경제학을 제시하는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 사회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좋은 사회를 향한 자유의 길로 나설 수 있기를 마음 깊이 희망합니다.
2025년 4월 4일
이강국
2025.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