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a = a 하고 있으면 인식이 안 된다. 동어 반복만 되니까 a = b로 가야 하는 게 인식의 기본 구조라는 거다. 그러면 이미 그 자체가 모순 아니냐는 a와 b는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다고 자꾸 얘기를 해 나가야만 인식이 전개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헤겔은 모순이 불가피하다는 것만 아니라 모순을 인식의 기관으로, 모순을 인식 내지 진리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게 변증법의 기본 원리가 된다. 이때 모순, 반명제, 안티테제 이것들은 명제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내가 찍어다 붙이는 게 아니라는 게 이른바 내재 비판. 그런 개념의 근본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것에까지, 그러니까 진리에 도달할 때까지 항상 주체가 관여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거는 객체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 객체를 떠나서 내 마음대로 이렇게 논리를 전개하는 게 아니라는 것, ‘객체가 척도’라는 것은 레닌의 변증법 개념과도 상당히 일치한다.
그러니까 개념의 운동을 주관적으로 제멋대로 하면 그건 자의와 궤변이고 이걸 객관적으로 할 경우에는 변증법적이라는 것이다. 레닌은 그렇게 정리한 것이다.
내재 비판은 헤겔에서 시작하지만 맑스의 경우에도 철저하게 내재 비판한다. 맑스가 내재 비판을 한다는 얘기를 여기서 조금 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으로 얘기하자면 맑스 [자본론]의 핵심이 결국 잉여 가치론이다.
잉여가치론을 얘기할 때 맑스가 자본가들은 나쁜 놈이라 해서 사기치고 이런 얘기 절대 안 한다. 가치 이하로 깎아내려서 교환하고 이런 것 아니다. 가치대로 임금을 준다는 전제하에서 정당한 교환 관계라는 전제하에서 그런데도 잉여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얘기하는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 끝까지 따져보면 결국 잉여 가치가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가는 거다. 그래서 [자본론] 1권 마무리할 때쯤 보면 잉여 가치론이 쭉 전개된 결과로 자본가들이 가치대로 정당한 교환, 자유로운 교환 어쩌고 얘기하지만 실은 이게 착취고 사기고 결론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결국 그것이 어떤 실상인가 까지를 보여주려고 한다는 이게 내재 비판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재 비판의 본질은 상대의 논리에 맞서서 내 나름대로의 척도를 가져다 들이미는 게 아니라 상대의 사고와 더불어서 상대의 사고의 힘에 의거해서 상대를 논박하는 과정인 것이다.
-하영진, '체계와 내재비판', <도시의 무지개> 293-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