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가 파악한 것

by 영진

사유와 실재는 다르다. 사유가 곧 실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유가 실재를 만들기도 하고, 사유는 실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유와 실재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유와 실재는 상호 작용하며 서로를 만든다.


사유가 실재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에, 사유가 실재의 반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 그럴 여지가 있다는 것에, 사유가 실재로부터 그만큼의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에, ‘사유의 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을 발판 삼아 사유는 실재를 바라는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유의 힘은 제법 세다고 할 수 있다. 실재가 ‘사유하기 나름’인 것은 아니지만 사유하는 대로, 사유하는 만큼 실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이 실재가 실제로 어떠한지 파악하는 것일 테다.


부단히 변화하는 실재를 따라잡으며 파악할 때, 그런 가운데 실재의 운동 법칙이나 변화 경로를 파악할 때 실재를 사유가 바라는 대로 만들어가기 수월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실재에 대해 사유가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실재에 대한 사유의 파악은 ‘불완전, 불명확,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유의 파악’이 문제 되거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완전한, 명확한, 확실한’ 파악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불완전, 불명확, 불확실’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명확,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실재에 대한 모든 파악이 잘못된 것, 틀린 것일 리는 없을 것이다. 잘못된 것, 틀린 것이라는 파악도 마찬가지로 완전, 명확, 확실하지 않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어떤 사유든 파악한 만큼은 파악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파악된 것의 절대적 아닌 상대적 완전, 명확, 확실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의 완전, 명확, 확실을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영진, '파악한 만큼은 파악했다', <보라의 시간> 301-302쪽.




보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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