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酒에 대해선 참 할 말이 많다. 술에 대한 애증사愛憎史라도 써야 할 듯싶다. 애증의 역사라고 할 만큼 대단한 愛나 憎의 史가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술로 인해 사라진 사람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 내 주변의 그들을 떠올려보면 그 숫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전쟁터도 아니고 산업현장도 아니고 술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사실 이해되는 측면이 크다. 처음부터 이해가 됐던 건 아니다. 어릴 적에는 왜 저러나 싶은 때도 있었지만,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술에 취할 수밖에 없겠구나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술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위로가 되는 게 술밖에 없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걸 실컷 누리며 살다 가는 게 행복 아닌가 생각도 한다. 다만, 누군가의 아빠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그들로 인해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과 상처를 생각하면 또다시 그럴 수밖에 없었나. 그게 최선이었나 싶은 것이다.
술 하면 생각나는 행복한 장면들도 많다. 그 중 하나가 <빗속에서>라는 글에서 썼던 산악부의 정익이 형으로부터 이쁨받던 시절이다. 술만 마시면 산에서 달리기하자던 형이 싫을 법도 한데 형이 사람이 워낙 좋아서 야밤에 술에 취해 산 능선을 넘곤 했다.
나의 경우는 술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술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해야겠다.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듯 술을 나누며 어울리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해야겠다. 일정량의 알코올에 의해 무장 해제된 감각들이 술기운을 빌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좋다고 해야겠다.
강요된 술 문화와 술로 아픔을 달래던 사람들 때문에 술을 처음 만나면서 술과 친해지기 보다 오히려 반감이 컸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 술을 대하는 여러 문화를 접하면서 나 스스로 술과의 관계를 즐기는 쪽으로 만들어온 셈이다.
2025.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