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를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반지성주의는 하나의 관념으로서는 단일한 명제 내용이 아니라 관련된 여러 명제가 중첩된 상태를 가리키며, 하나의 태도로 볼 때는 흔히 양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지성이나 지식인에 대한 순수한 혐오는 보기 드물다. 그리고 역사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면, 반지성주의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한 가닥의 실이 아니라 때에 따라 강도가 변하는 다(24)양한 원인에서 힘을 끌어내는 하나의 세력이다.
이 책에서 나는 엄밀하거나 협애한 정의를 고수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런 식의 정의가 다소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정의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방어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자의적인 행위여서, 별다른 이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 식의 정의는 서로 중첩되는 여러 속성 중에서 한 가지만 추려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서로 중첩되는 그것 자체이다−많은 접점을 가진 다양한 태도와 관념의 역사적 관계의 복합체 말이다. 내가 ‘반지성적’이라고 일컫는 태도나 사고에 공통되는 감정은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또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언제나 얕보려는 경향이다. 내 생각에 이런 일반적인 정식화는 과감한 정의만큼이나 유용할 것이다.
일단 이런 순서를 택하면, 한 사람의 삶이나 어떤 제도, 어떤 사회 운동의 발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반지성주의를 공식적인 역사의 주제로 삼을 수 없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미국적인 사고가 생겨난 환경이나 분위기를 다루면서 나는 어떤 환경을 재현하거나 분위기를 포착할 때 시도하는 식의 인상주의적 방법을 활용해야 했다.
내가 반지성주의라는 말로 나타내려는 내용을 예시하기에 앞서,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에 대해 설명해둘 필요가 있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미국 지식인 공동체의 내적 불화나 다툼은 다루지 않는다. 미국의 지식인도 다른 나라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대개 자신들의 역할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러면서 자기회의나 심지어 자기혐오에 빠지기 일쑤고, 때로는 자기네 집단 전체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한다. 이런 내부 비평은 의미심장하고 흥미롭지만, 나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나(25)는 또 지식인끼리 벌이는 무례하고 분별없는 비평에도 관심이 없다. 예컨대 H. L. 멩켄H. L. Mencken만큼 미국의 대학교수들을 경멸한 이는 없으며, 메리 매카시Mary McCarthy만큼 소설 속에서 다른 작가들에게 독설을 퍼부은 이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유로 멩켄을 윌리엄 F. 버클리William F. Buckley와 나란히 교수들의 적으로 분류하거나 매카시 양을 작고한 동명의 상원의원과 하나로 묶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쨌든 다른 지식인들을 비평하는 것은 지식인의 매우 중요한 책무이며, 지식인은 일상적으로 비평을 기꺼이 수행한다. 지식인에게 자애롭고 우아하고 정확한 비평을 바랄 수는 있지만 정말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양하고 상반되는 사고를 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소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그들이 한낱 말다툼만 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망적인 혼란을 피하기 위해 꼭 언급해둘 것이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반지성주의는 내가 반합리주의anit-rationalism라고 부르는 철학상의 교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니체나 소렐, 베르그송, 에머슨, 휘트먼, 윌리엄 제임스 같은 사상가, 혹은 윌리엄 블레이크나 D. H. 로렌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작가 등의 사상은 반합리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내가 반지성주의라는 용어에 담는 사회학적·정치학적 의미에서 구분하자면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자와는 다르다. 물론 반지성주의 운동이 종종 이런 반합리주의 사상가의 사상에 호소한 것은 사실이다(에머슨만 하더라도 수많은 텍스트를 반지성주의 운동에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반지성주의 운동은 고상한 척하는 교양인의 반합리주의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26)루는 문제는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사회적 태도와 정치적 행동, 그리고 지적 수준이 보통이거나 더 낮은 사람들의 반응이며, 정연한 이론에는 이따금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내가 제일 관심을 쏟는 것은 당면한 문제에서 효과를 발휘할 만큼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지적·문화적 생활을 심각하게 억제하거나 빈약하게 만드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이다. 최근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정의라는 앙상한 뼈대에 살이 좀더 붙게 될 것이다.(28)
ㅣ출처ㅣ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2025.
원제 :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19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