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다수와 지적이고 명민한 일반 국민의 상당수도 단순히 비 지식인은 아니다. 이 사람들은 지성과 지식인에 관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당면한 문화적 문제들에 관해 끊임없이 동요한다. 그들은 계란 머리(그럴듯한 지적 허세를 부리는 사람)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을 품고 있지만, 또한 계몽이나 문화를 진심으로 열망하기도 한다. 더구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 관한 책이 미국 문화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로 받아들여지기는 힘들다. 은행 파산의 역사를 경제 부문의 역사 전체로 여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반지성주의가 미국의 문화에 널리 스며들어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반지성주의가 지배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독자들도 알아채겠지만, 내가 여러 차례 감지한 것처럼, 반지성주의는 온건하고 점잖은 형태로 널리 퍼져 있는 반면에 가장 악의적인 형태는 주로 시끄러운 소수 집단에서 발견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비교 연구가 아니다. 원래 이런 책이 지향해야 하는 것과 달리 말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내가 미국 사회에 대해 가지는 특별한, 혹은 좁은 관심의 결과일 따름이다. 나는 다른 나라에는 반지성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지성주의가 미국에서 보통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인 건 맞지만, 형태나 정도의 차(42)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반지성주의는 나라에 따라 독미나리 처방[민간에서는 독초인 독미나리를 진통제나 파상풍 치료제 등으로 쓴다. 무분별한 민간의학을 꼬집는 것이다]. 대학 도시나 대학의 폭동, 검열과 통제, 의회에 의한 조사 등의 형태를 띤다. 다만 그 보편성을 인정하더라도, 내 생각에 반지성주의는 영어권 문화유산의 일부로서 영미의 생활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인 것 같다.
몇 년 전에 레너드 울프Leonard Woolf는 “일찍이 영국인들만큼 지성과 지식인을 경멸하고 불신한 국민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마 울프씨는 이런 의미에서는 미국인들이 최고라는 주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영국인들은 한 세기가 넘도록 미국인들의 자랑을 듣는 데 질렸기 때문에 그래도 이해할 만 하다). 하지만 오래도록 자국 문화에 관해 그토록 친숙하고 깊이 아는 영국 지식인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새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지식인은 특별히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들이 느끼는 고뇌는 대부분 다른 나라 지식인들에게도 공통되는 경험이며, 미국에는 사태의 심각함을 초래하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비판적 탐구이지 미국 사회와 맞서는 지식인들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식인들이 빠지기 쉬운 자기연민을 정당화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다. 그들은 스스로 바빌론에서 붙잡힌 순수한 의인을 자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를 옹호하거나, 지식인은 전면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거나 혹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조건 없이도, 지성과 지성의 역할을 존중하는 것은 어디에서든 문화와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며, 미국 사회에서는 종종 이런 존중이 부족했다고 존중할(43) 수는 있을 것이다.
지식인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사람 가운데 지식인을 부당하게 이상화하려는 이는 없다. 그러나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인간인 지식인과 지성의 주된 역할을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로마 교회의 지혜가 떠오른다. 사제는 비록 육신의 죄와 잘못을 범할 수 있지만 교회 자체는 여전히 거룩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지성 자체는 과대 평가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성을 인간사에 적절히 위치 지으려는 합당한 시도를 반지성주의라고 지칭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나는 잊지 않는다. “인간적 속성이 부족한 지적 능력은 체스 신동과 같은 의미에서만 존경받는다”는 T. S. 엘리엇의 말에 굳이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온갖 위험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미국 사회 전체가 지성을 과대평가할 위험이나, 다른 정당한 가치들을 몰아낼 만큼 지성에 초월적 가치를 부여할 위험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ㅣ출처ㅣ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2025.
원제 :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19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