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장애정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 정의定意와 역사를 간략히 서술하고자 한다.
정의와 역사의 서술이 중요한 이유는 너무도 많지만, 특히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지금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작업과 우리가 쓰는 단어들을 흑인, 선주민, 유색인들이 창조해냈다는 사실이 지워지고 이들의 정치가 희석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장애정의와 관련해 그런 일이 일어날 때의 특정한 위험이 있는데, 장애가 있는 흑인 및 브라운 창작자(34)들은 우리의 정치적, 문화적 작업이 특정하게 비가시화되고 삭제당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나는 장애정의라는 말을 창안한 흑인과 브라운, 펨들의 공로를 인정하면서, 장애정의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를 분명히 하고 싶다.
신스인발리드의 공동 창립자이자 상임이사인 패티 번의 말을 빌리자면,
장애인권운동은 장애인들을 위한 정의를 향해 구체적이고 급진적으로 움직여왔지만, 동시에 억압이 교차하는 지점들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가시화해왔다−특히 유색인 장애인, 장애가 있는 이주민, 퀴어 장애인, 트랜스와 젠더 비순응gendernonconforming 장애인, 장애가 있는 노숙인, 투옥된 장애인,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긴 장애인의 삶을, (……) 장애정의 활동가, 조직활동가, 문화노동자들은 비장애-신체 우월주의가 다른 지배와 착취 체계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왔음을 이해한다.
백인우월주의와 비장애중심주의의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이 뒤엉켜 있으며, 둘 다 식민주의적 정복과 자본주의적 지배의 도가니 안에서 벼려졌다. 미국의 노예제와 선주민 땅의 약탈, 미국 제국주의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백인우월주의가 어떻게 비장애중심주의를 활용해서 덜 가치 있고, 능력이 떨어지고, 덜 똑똑하고, 덜 유능하다고 간주되는 종속된 ‘타자’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 비장애중심주의가 이성애 중심적 가부장제, 백인우월주의, 식민주의, 자본주의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파악하지 않고서 우리는 비장애중심주의를 제대로 이해할(35) 수 없다. 이 각각의 체계는 종속된 ‘타자’로부터 이윤을 뽑아내고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이득을 얻는다. 흑인과 브라운 공동체들에 500년 넘게 자행된 폭력의 역사에는 어떤 몸과 정신이 비규범적이라는 이유로 ‘위험하다’고 간주되었던 500년 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장애정의 인식틀은 모든 몸이 독특하고 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몸이 힘을 갖고 있으며 충족되어야 할 필요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는 우리가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 몸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게 아니라 바로 그 복잡성 때문에 강력하다는 것을 안다. (……) 장애정의는 집단 투쟁에서 탄생한 전망을 안고, 언더그라운드 문화 속 천 개의 길 안에서 문화적이고 영적인 저항의 유산을 끌어와서, 일상생활에서의 작지만 끈질긴 반란의 불길을 일으킨다. 전 지구적 다수인 흑인 및 브라운 장애인들은 삶과 정의를 위한 우리의 투쟁 속에서 식민주의적 권력에 맞서 그 권력을 전복한다는 공통의 입장을 공유한다.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는 저항은 언제나 있어왔고, 우리가 뼈에 사무치게 알고 있듯이, 그 저항에는 늘 우리가 번성하는 세상, 우리의 무수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를 가치 있게 여기고 우리 존재를 축하하는 세상을 마음속에 그려온 장애인들이 있어왔다.
l출처
가장 느린 정의 - 돌봄과 장애정의가 만드는 세계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지음, 전혜은, 제이 옮김, 오월의봄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