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에서, 따라서 이론에서도 주체와 객체는 예술 작품 자체의 계기다. 예술 작품을 이루는 것들, 즉 재료, 표현, 형식 등은 각각 주체이기도 하고 객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변증법적이다. 재료들은 예술 작품에서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 규정된다. 표현은 작품 속에서 객관화되며 또 자체로서 객관적이지만 주관적 충동으로서 작품 속에 들어간다. 형식은 형식화된 것을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으려면 객체의 필요성들에 따라 주관적으로 유발되어야 한다. 인식론에서 어떤 주어진 것을 구성하는 일과 유사하게, 대체로 재료처럼 예술가들에게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다가오는 것은 동시에 침전된 주체이기도 하다. 외관상 가장 주관적인 요인, 즉 표현도 예술 작품이 그것에 전념하고 또 그것을 동화하는 점에서는 객관적이다. 궁극적으로 어떤 주관적 반응 속에는 객관성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주체와 객체의 상호 관계는 결코 동일성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위태롭게 평형을 이룰 뿐이다. 주관적 제작 과정은 그 사적이 측면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내재적 법칙성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어떤 객관적 측면을 지닌다. 예술에서 주체는 전달 행위가 아니라 노동으로서 그 본연의 역할을 해낸다. 예술 작품은 평형을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지만 평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미적인 가상적 성격의 한 측면이다. 개별 예술가는 또한 그러한 평형을 실현하는 기관으로서 기능한다. 그는 생산과정에서 자신이 그것만을 떠맡았을 뿐인지 단언하기 어려운 어떤 과제에 직면한다. 대리석 덩어리 속에서 하나의 조각이, 피아노 건반들 속에서 한 편의 곡이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과제에 대해 아마 은유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러한 과제들은 비록 등식과 같은 일의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변동 폭 이내에서는 그 자체 속에 객관적 해답을 담고 있다. 예술가의 행위는 자신이 대면하고 있고 자체로 이미 규정되어 있는 문제와, 그와 마찬가지로 잠재적으로 재료 속에 들어 있는 해답을 매개하는 최소치다. 흔히 도구를 연장된 팔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를 연장된 도구, 즉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 이행하기 위한 도구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381-382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아도르노 [미학이론]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