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

by 영진

아직 현존하지 않은 것이라는 계기 때문에 천재적인 것은 독창성 개념과 결합되었고, ‘독창적 천재’라는 말도 나왔다. 독창성 범주가 천재 시대 이전에는 아무 권위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또 17세기와 18세기 초의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들에서 유래하는 것이든 타인의 작품들에서 유래하는 것이든 그 전체를 자신의 작품에서 다시 이용하기도 했으며, 화가와 건축가 들은 자신이 구상한 것을 제자들이 실행하도록 맡기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쉽사리 특유하지 않은 것이나 틀에 박힌 것을 옹호하는 데에 혹은 주관적 자유를 비난하는 데에 악용된다. 아무튼 예전에 독창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예술 작품들 속에 그런 요인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점은 바흐와 그 시대 다른 인물들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특정한 작품의 특유한 본질인 독창성이 어떤 보편적 요인을 함의하는 작품들의 논리성과 자의적으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창성은 평범한 재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논리적 일관성을 띠는 철저한 형상화를 통해 입증된다. 그러나 다소 오래된 작품들, 특히 태고 시대의 작품들과 관련해서는 그것의 독창성에 대한 물음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지배권을 비호하는 집단의식의 강압이 극히 강력했기 때문에, 해방된 주체와 같은 것을 전제하는 독창성은 시대착오적인 것이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것으로서의 독창성 개념은 낡은 것보다는 오히려 작품들에 담긴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 그 속의 유토피아적 흔적을 불러낸다. 모든 작품의 객관적 명칭이 다름 아닌 독창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창성이 역사적으로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역사적인 불의와도 연루되어 있다. 그것은 시장에서 소비재들이 우월성을 지닌다는 부르주아사회의 특성, 즉 손님을 끌기 위해 동일한 것을 항상 새로운 것이라고 속여야 하는 특성과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자율성이 증가함에 따라 독창성은, 비록 시장에서 차지하는 어떤 위상을 벗어날 수 있었던 적은 없어도, 시장에 대립하게 되었다. 독창성은 이제 작품들 속으로, 즉 작품들을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하게 형상화하는 일로 후퇴했다. 그것은 개인이라는 범주에서 파생했고 이 범주의 역사적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 독창성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된 이후 사람들은 언제나 이른바 개별 양식을 연상했는데, 이제 더 이상 독창성은 그러한 것에 따르지 않는다. 개별 양식을 통해 그 나름으로 관습화된 상품들을 옹호하는 전통주의자들은 이 개별 양식이 소멸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진보적인 작품들에서는 개별 양식이 마치 구성적 요구들에 속아 넘어간 듯이, 어떤 오점이나 결함 혹은 최소한 타협적인 면을 지닌다. 특히 그 때문에 전위적 생산은 개별 작품의 독창성보다 새로운 유형들의 생산을 추구한다. 독창성은 이러한 것을 고안해 내는 일로 변하기 시작한다. 독창성은 자체로서 질적으로 변하지만, 이 때문에 독창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394-395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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