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 걸음

가능성에 열려 있다

by 영진

’다르기‘ 때문에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다.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것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달라서는 안 돼가 아니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금과는 다른 것을 가능하게 한다. 더 좋을 수도, 더 나쁠 수도 있지만,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것이다. 더 좋은 쪽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다를 수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링) 세상의 변화라는 것이 너무 크게 멀게 느껴지나 보다. 변화라는 것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로부터 시작해서 커져 나가는 것이기도 한데 그렇게 변해가는 것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것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되는 것인데 그만큼은 변하는 것인데(라파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교육은,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드는 것”(루소)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가는 과정”(292)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자본주의 교육을 통해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다른 사회를 꿈꾸게 하는 것,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비판적 견해를 갖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자본주의 사용설명서)



억압적인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역사, 자연과 인류 자신에 대한 앎이라는, 미지未知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인류는 권력투쟁의 전쟁이 멈춘 해방된 공존의 상태를 기획하기도 했을 것이다. 역사에서 권력투쟁이 필연이라면 미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은 필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풍요롭고 평등한 삶)



사회가 움직이는 그 기능이 좋으냐 나쁘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를 유지하고 작동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면 그냥 다 통용되는 것이다. 그걸 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전쟁 때 사람 죽여도 되는 것이다. 일상은 안 되지만. 사회 기능주의다. 가치판단 하는 게 아니다. 구조가 잘 작동하도록 그 안에서 작동을 하고 있으면 괜찮은 것이다. 이걸 못하면 나쁜 기능이 되는 것이다. 근데 기능이 잘 돌아가면 그게 인간을 죽이든 말든 상관이 없다. 그렇게 된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파슨스를 ‘기능주의’라고 비판한다.(역할과 기능주의)



‘동일시’는 사유에 불가피한 면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동일시하는 것만으로 끝내버리고 비동일자를 배제할 때 이른바 ‘동일성 사유’에 빠진 것이라고 비판을 받는 것이다. 동일시하는 것 때문이라기보다 동일시는 사유의 기본이고 그것에 매몰되는 것, 그것에 대한 자각이나 비판이 없는 것, 이게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개념을 통해서 파악된 것들을 놓고 그것들이 실제 대상과 부합하는지 안 하는지 거기서 빠져나간 것들의 중요성이 뭔지 따지는 작업을 통해서 사유의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비동일자)



2025. 12. 9.




문장 출처 - 꿈꾸며 한 걸음 괄호 안은 글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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