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이에서라면 서로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법도 한데 좋아하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더 어렵기도 하다. 그 이도 내 마음과 같기를 그 이와 한마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럴 수 있지 라며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덜 좋아하는, 덜 사랑하는 것일까. 더 좋아하니까, 더 사랑하니까 그런 것일까. 어쨌거나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유로 마음을 비우기가, 내려놓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부단히 마음을 다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너의 마음 속으로)
혹자는 문장이 아니라 ‘단어’ 하나에도 이미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보기도 한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기에 글쓴이의 ‘생각’에 따라 선택하는 단어(어휘)가 달라지기에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문장은 단어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동일한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글쓴이의 생각(세계관,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단어가 달라지는 것이니 말이다. 글쓴이의 생각이 표현된 것이 ‘문장들’이고 ‘문장들’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니, ‘문장’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명저의 탄생)
물론, 우리는 아무도 ‘코끼리’와 같은 거대한 현실의 전체를 알 수 없으며, 그 어떤 것이 가장 본질적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으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며, 전체를 알아가는 것, 그 중에서도 좀 더 본질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었지만 대다수가 바라지 않는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총에 맞고 싶지 않다면 냉랭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엘리펀트)
그래서인지 끊임없이 이어질지 모르는, 모두가 희생될 수도 있는 싸움으로부터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모두를 살리는 월트의 모습을 보면서 참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상대적으로 득을 점하고 있는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진정으로 화해, 협력, 상생을 바란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먼저 당신을 포기할 수 있는가?(그랜 토리노)
분류하면 서로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다. 아니야 나랑 상관없는 거야.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자기 성찰도 하고 이렇게 뭔가 현실을 가변적으로, 전체 상황들을 가변적으로 생각하면서 그 속에서 뭔가 핵심을 짚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현실이 비인간적이다. 문제가 있다. 모순이다. 극복해야 한다라는 마인드가 있다. 그런 것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권위주의적 성격)
변증법적 인식은 기존의 인식에다 새로운 빛을 쪼인다는 것이다. 새로운 빛을 쪼여서 그 과거의 인식이 새롭게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딱 고착시키려고 하는 걸 어떻게 피할 것이냐 했을 때, 이것은 하나의 모델이니까 이걸 통해서 여러분들도 스스로 해보라는 것이다. 공식들에 맞춰서 외우고 안다고 생각하고 끝내고 이런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를 다시 하라는 것이다.(새롭게 빛을 발하게 하는)
헤겔은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대상을 파악하게 되면 대상도 변한다. 그러면 다시 나도 변한다. 그래서 이게 타당한가 안 한가를 검증하는 척도도 달라진다. 이 삼자가 다 변하는 ‘불확정성 원리’가 그런 것이다. 내가 관찰하는 대상 자체가 이미 관찰을 통해서 변화된다. 그럼 변했으니까 또 나도 변해야 한다. 그런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고 헤겔의 경우는 개념은 순전히 내가 지어낸 것만이 아니고 개념이 변한다는 것은 그 대상 자체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라고 본다.(새롭게 빛을 발하게 하는)
2025. 12. 6.
문장 출처 - 나란히 한 걸음 괄호 안은 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