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이 안다고 말하는 사실들은 남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이다. 그 ‘남’이라는 것이 ‘책’이나 ‘언론이나 영상매체’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말’ 일 수도 있다. 우리는 남을 ‘통해야’ 무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를 통해서, 어떤 책이나 언론 매체를 통해서 안 것인지, 그 남이 ‘어떤 남’ 인지도 중요하다. 대개 ‘통한대로’ 알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남’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 혼자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지언정 내가 아는 것이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조차 ‘남’을 ‘통해야’하는 것이다. 더구나 ‘잘’ 안다는 판단이 필요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인지 판단해 줄 ‘잘’ 아는 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잘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의 양, 많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 알기 위해서는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확인하는 ‘성실성’이 중요하다. 확인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잘’ 알게 될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안다는 것은 ‘확인 과정’을 여러 번 거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안다는 것은 완전하고 완벽하게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확인 과정’을 거치고 거쳐도 여전히 잘 모르는 부분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잘 안다는 것도 확인 과정 중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중요해지는 것은 ‘확인 과정’이다. 확인하지 않는다면 잘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확인 과정에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알고 있던 것에 있던 오류를 줄여나가게 된다. 그렇게 잘 ‘알아가는’ 것이다.
‘잘’ 안다는 것은 대상이나 사태의 본질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많이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나 사태를 이루는 현상만 많이 알고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잘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해서 본질적이지만 감추어지거나 가려지기 때문에 더 중요하지만 잘 알기 어려운 것이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알아내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말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도 그런 본질적인 측면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사실인데 잘못 알고 있다가 ‘확인 과정’ 없이 믿거나 함부로 말하거나 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본질을 가리거나 은폐하는 것은 지배 세력이 자신들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데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본질은, 더 중요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하영진, '안다는 것', <웃으며 한 걸음> 98-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