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이후에 부활한 문화에서는 예술이 그 순수한 현존재로 인해 모든 내용 및 사상 내용에 앞서 이미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미 발생한 공포 및 위협적인 공포에 대한 부적절한 관계는 예술을 냉소주의에 빠뜨린다. 그래서 예술은 공포와 맞서는 경우에도 그로부터 주의를 돌려놓는다. 예술의 객관화는 현실에 대한 냉담함을 내포한다. 이로 인해 예술은 야만상태와 한 패거리로 격하된다. 객관화를 포기하고, 설혹 논쟁적 참여를 통해서일지라도, 매개되지 않은 채 가담하는 경우에도 예술은 그와 동일한 야만상태의 공범자로 추락한다. 오늘날 모든 예술 작품은, 극단적인 예술 작품조차 나름의 보수적인 측면을 지닌다. 그것의 실존은 정신과 문화의 영역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 이 영역이 현실적으로 무기력하며 재앙의 원칙과 얽혀 있다는 점은 오늘날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통합의 추세에 반대하는 이 보수적 측면은 온건한 작품들에서보다 가장 진보적인 작품들에서 더 강력한데, 그 때문에 그것이 단순히 몰락해야 마땅한 것만은 아니다. 정신이 가장 진보적인 형태로 살아남아 계속 작용하는 경우에만 사회적 총체의 독재에 저항하는 일이 아무튼 가능하다. 인류가 청산하기 시작한 일을 인류가 떠맡도록 진보적 정신이 만들지 못한다면, 인류는 이성적 사회조직을 방해하게(529) 될 야만상태에 빠질 것이다. 예술은 관리되는 사회에서도 허용된 채 관리되지 않고 총체적 관리를 통해 억압받는 요인을 구현한다. 베케트의 작품에 정치적인 단어는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현대 그리스의 폭군들은 그의 작품을 금지했는데, 그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비사회성이 예술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해 준다. 진정한 작품들은 화해를 위해 화해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분열적인 작품조차 벗어날 수 없는 통일성은 해묵은 화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예술 작품들은 아프리오리하게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는 예술 작품은 그 책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자 한다. 예술 작품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종합을 위한 그것들의 노력이 화해 불가능한 상태이기도 하다는 데에 있다. 자율적 예술 작품을 현실에 맞세우는 종합이 없다면, 현실의 속박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정신의 분리 원칙은 그 주위에 속박을 퍼뜨리겠지만, 그것은 속박을 규정함으로써 깨뜨리는 것이기도 하다.(530)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아도르노 [미학이론]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