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두철미 만들어진 것인 예술 작품은 그 모든 계기들이 주체에 의해 매개됨으로써 객관적인 것이 된다. 주관성과 사물화의 몫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인식 비판적 통찰은 미의 영역에서 비로소 입증된다.(386) 예술 작품들의 가상적 성격, 즉 예술 작품들을 즉자존재라고 보는 환각은 예술 작품들이 주체에 의해 매개된 상태의 총체를 통해 사물화의 보편적 기만 관계에 관여한다는 사실,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 예술 작품들이 살아 있는 노동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마치 사물들의 관계인 것처럼 반영한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술 작품들은 일관성을 통해 진리에 관여하지만, 그 일관성은 예술 작품들의 허위를 포함하기도 한다. 예술은 노골적인 표현들을 통해 예로부터 그러한 것에 반대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러한 반대는 예술 자체의 운동 법칙으로 변했다. 예술의 진리와 허위 사이의 이율배반으로 인해 헤겔은 예술의 종말을 예언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부분들에 대한 전체의 우위에는 본질구성상 다수 요인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이 전체의 우위가 위로부터 단순히 설정되는 경우 실패한다는 점을 전통적 미학이 통찰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예술 작품도 그 점에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본질구성적이다. 물론 다양한 것은 미적 연속체 속에서 종합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미 영역 외부에서 규정된 것으로서 그러한 종합에서 벗어난다. 다수 속에 잠재해 있으면서 다수로부터 추론되는 종합은 불가피하게 다수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형상을 통한 화해는 외부에, 즉 메타 미적으로, 화해가 부재하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실패한다. 현실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적대 관계들은 상상을 통해서도 해소되지 않는다. 이 적대 관계들은 상상 속에 파고들며 상상 자체의 비일관성 속에서 재생산된다. 더욱이 적대 관계들이 자체의 일관성을 추구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그렇다. 예술 작품들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할 것처럼 등장할 수밖에 없다. 어떤 작품도 스스로 하찮은 것이 될 위험을(387) 무릅쓰지 않는 한 작품의 완전성이라는 이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지만, 그 이념은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속에서 불확실한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만 아니라, 미적 진리에 몰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노력해서 그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도 난관에 봉착한다. 역사적 현실에서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이상 예술은 단지 주체를 거쳐 간 것으로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주체에 의해 제작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메시스는 생명체로서의 주체 속에 말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 주체를 필요로 하는 예술의 내재적 실현을 통해 예술이 객관화되는 경우에도 계속된다. 예술 작품이 그 객관화를 통해 주체에 은폐되어 있는 진리가 나타나기를 희망한다면, 그것은 주체 자신이 궁극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의 객관성이 객체의 우위와 맺는 관계는 깨어졌다. 예술 작품의 객관성은 주체 속에서만 즉자가 아직 피난처를 얻을 수 있게 된 보편적 속박 상태에서 객체의 우위를 증언한다. 반면에 이런 부류의 객관성은 주체에 의해 야기된 가상으로서 객관성에 대한 비판이다. 예술 작품의 객관성은 그러한 객체의 세계로부터 단지 흩어진 요소들membra disiecta만을 받아들인다. 분해된 것으로서만 객체의 세계는 형식 법칙과 공약수를 지닌다.(388)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아도르노 [미학이론]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