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본질구성적 성격; ‘이해 가능성’

by 영진

역사적 계기는 예술 작품들에 본질구성적이다. 진정한 예술 작품들은 그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는 주제넘은 주장을 하지 않고 아무런 유보 없이 그 시대의 역사적 소재내용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들이다. 그러한 예술 작품들은 스스로를 의식하지 못하는 그 시대의 역사 기술이다. 무엇보다도 그로 인해 예술 작품들은 인식과 매개된다. 바로 이 때문에 그러한 예술 작품들은 그것들 자체의 역사적 사상내용을 추적하는 대신 그것들을 그 외부의 역사에 환원하는 역사주의와 공통점을 지닐 수 없다. 예술 작품들의 역사적 실체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실체로 되면 될수록 예술 작품들은 더욱 진정한 것으로 경험된다. 자기 시대의 예술 작품들보다 충분히 오래된 과거의 예술 작품들(417)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점에서도 부르주아 예술 사업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 오늘날의 수준급 예술 작품들이 지니는 경험의 층들, 즉 그러한 예술 작품들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인은 객관적 정신으로서, 현실적 의식으로부터 소외된 역사철학적 전제 조건들을 지니는 작품들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공통점을 현대인들과 지닌다. 바흐를 철저하게 파악하고자 하면 할수록 그는 그만큼 더 수수께끼처럼 온 힘을 다해 감상자를 돌아다본다. 양식을 추구하는 의지로 인해 타락하지 않은 오늘의 작곡가들이 음악 학원의 교재나 평균율 피아노곡의 패러디 혹은 빈약한 복사본보다 더 낫다고 할 만한 푸가를 떠올리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대 예술의 극단적 충격들과 소격 효과를 만드는 제스처들, 혹은 보편적이고 불가피한 반응 방식에 대한 지진기록들은 그저 역사적 사물화로 인해 가까워 보이는 것보다 실제로 더 가깝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반면에 조작당하는 사람들이 멀리하는 것들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너무 잘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섬뜩한 것이 섬뜩한 이유는 그것이 은밀하게 너무 친숙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프로이트의 격언과도 상응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멀리한다. 처리될 수 있고 조종되는 경험들만 장막 저편에서는 문화유산으로, 이편에서는 서양 전통으로 세례받은 것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한 경험들은 인습에 너무 친숙하다. 그런데 너무 친숙한 것은 활성화되기 어렵다. 그것들은 직접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순간 사멸한다. 즉 그것들에 아무 긴장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 점은 모호하여 의심의 여지 없이 이해도 되지 않은 작품들이 고전의 판테온에 올라 집요하게 반복된다(418)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또 공공연한 전위예술에 한정된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전통적인 작품들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어 터무니없다는 점, 즉 객관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도 그것은 명백히 나타난다. 물론 이를 인식하는 데에는 우선 그런 작품들과 해석들을 녹처럼 덮고 있는 이해 가능성이라는 가상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예술 소비자는 이에 대해 지극히 거부적이다. 예술 소비자는, 어느 정도 타당하게, 자신이 소유물로서 보관하는 것들을 빼앗긴다고 느낀다. 다만 그는 자신이 그것을 소유물이라고 광고하자마자 그것은 이미 빼앗긴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세계에 대해 낯선 상태는 예술의 한 계기다. 세계를 낯선 것으로 지각하지 않는 사람은 세계를 전혀 지각하지 못한다.(419)



ㅣ출처

미학 이론

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원제 : Asthetische Theorie





아도르노 [미학이론]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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