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 충실한
구름낀 하늘은 왠지
네가 살고 있는 나라일 것 같아서
창문들마저도 닫지 못하고
하루종일 서성이며 있었지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이 하고 파서 였을까
먼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난 왜 너 닮은 목소리마져
가슴에 품고도 같이 가자 하지 못했나
-윤도현, ’너를 보내고‘
작사를 한 분이 군대에서 의문사한 친구를 그리며 지었다는 노래로 알고 있다. 나에게는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이라는 가사가 가끔씩 떠오르는 노래다. 삶이 작은 문턱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문턱을 쉽사리 넘지 못했던 이들이 생각날 때면 찾아 듣는 노래다.
그들 중에서도 의문사는 아니지만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한 친구가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저 노래의 가사만큼이나 아름다운 시를 쓰던 친구. 아버지와의 불화로 고통스러워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얘기를 들어주는 일밖에 없었다. 열 몇 살의 나이에 혼자 지내다 몸이 망가져 죽음에 이른 친구.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그 말은 삶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자. 이것이 삶과 죽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전부라고 해야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그런 정도의 삶을 몸이 벌써부터 살고 있었던 건 주어진 주변 환경이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에서 조금 모자라거나 조금 더 하거나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환경에서 살아 온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그 친구 이후에도 병으로 사고로 스스로 죽음에 이른 이들이 많았지만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에 미안한 정도였다.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죽음이 내 몸에 남긴 죽음에 대한 의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자는 생각으로 내가 바라는 삶을 살려 했고 살아간다. 지금 죽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지금 죽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에 충실한 삶을 살려 한다.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도 하면서.
2026.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