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에서 꺼내 본다. ‘8월’에도 종종 꺼내 본다. 제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꺼내 놓고 보면 늘 그럴만한 이유를 발견한다.
주인공 정원(한석규)이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이 해마다, 영화를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죽음을 앞둔 정원의 심정이,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매해 다르게 다가온다고 하는 것이 좀 더 맞는 표현이겠다.
무더운 ‘8월’에 보는 것과 끝을 향해 가는 연말의 크리스마스 즈음에 보는 것도 그 느낌이 다르다. 다림(심은하)과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선풍기, 아이스크림,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시원함 때문인지 ‘8월’에 볼 때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그에 비해 크리스마스 즈음에 볼 때는 그들의 이별과 정원의 죽음과 연관된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죽은 후에 남겨질 것들을 챙기는 정원의 모습들이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에서부터, 아버지께 TV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주는 모습, 마침내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그런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운명처럼 만난 다림과의 사랑을 ‘못다 이룬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랑이 다를 건 없어 보인다.
늘 알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니 말이다.
알고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알리고 싶지 않은 사정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늘 있는 것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정원을 기다리다 지친 다림이 사진관 유리문에 돌을 던진다.
기다림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의 정원,
아니, 자신의 처지를 말할 새도 없이 어느새 사랑이 그들 사이에 물들어 있었을 뿐이다.
정원의 처지를 모르니 오지 않는 정원이 야속하기만 한 다림. 돌이라도 던져야 한다.
그들의 사랑도, 사정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랑은 매한가지다.
한순간일지언정 우리네 인생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선물이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사실도, 그 순간이 삶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마저도, 마음에 선물을 간직한 채 살다 떠나간다는 사실까지도 매한가지다.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정원)
삶의 단순한 진리들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인생에 관한 영화이면서 나에게 인생 영화이기도 하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느낌의 영화가 내년 ‘8월’에는 어떤 인생을 느끼게 해 줄지 기대된다.
2023.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