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예사롭지 않다. 이제 그 어떤 이상 기후가 닥쳐와도 담담히 대처할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물론, 조금이나마 더 늦게 덜 이상해지도록 ‘땅과 바다’에 애정을 가지고 애쓰시는 분들을 지지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노동자국가’, ‘평화로운 과학기술’ 지지)을 하면서 말이다.
‘나’라는 선물을 지어준 지구에서, ‘나’를 지킬, 내가 누릴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한파 때문인지 내 몸이 유난히 차갑게 기억하는, 때때로 불쑥불쑥 내 몸이 불러내곤 하는 그해 겨울이 떠올랐다.
비리 재단에 맞서던 선생님들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학교는 교실의 난방을 차단했다. 추운 교실의 이유를 재단에 저항하는 선생님들에게 물으려는 학교 측의 술수였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재단에 맞서던 주동자이기도 했던 세계사 선생님께 춥다는 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
“권리는 스스로 찾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좀 의외였다.
그래서 지금껏 잊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겨울날의 추위에 더해 선생님의 냉랭한 말씀 때문에 내 몸이 그해 겨울을 유난히 차갑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비리 재단과의 싸움은 그 이듬해로 이어졌고, 대학생 선배들의 잦은 학교 방문에, 대학 입시 준비에, 친구들의 학생회장 출마와 선거에, 선생님들을 연행하기 위해 찾아오던 사복 경찰들과의 싸움까지, 앞으로 살아갈 사회의 많은 일들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해의 시간은 다른 무엇보다 ‘권리는 스스로 찾는 것’이라던 세계사 선생님의 냉랭한 목소리가 압도해 버린 차가움으로 기억된다.
늘 그렇듯 준비 없이 뜻하지 않게 맞아야 했던 그 시간들은 당시 선생님들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권리는 스스로 찾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차가움과 함께 몸에 새겨준 것만 같다.
그 때문인지 그 이후의 삶에서 그해와 같은 문제적인 시간들을 마주하게 되면 ‘권리는 스스로 찾는 것’이라던 선생님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리곤 묻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권리를 스스로 찾으며 살고 있는가.
2023.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