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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평등, 함께 누릴 수 없을까?

영화 <야만적 침략> 읽기

by 영진

드니 아르깡 감독의 영화 <야만적 침략>(원제: Les Invasions Barbares / Invasion Of The Barbarians, 캐나다, 프랑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야만적 침략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야만을, 침략을 소리 높여 말하지도, 충격적으로 보여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감독은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며, 때로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아들을 꾸짖고, 때로는 아들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비웃는다. 감독 특유의 유머 및 풍자와 함께 시종일관 따듯한 시선을 잃지 않는 태도에서 드니 아르깡 감독의 힘을, 삶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야만적 침략은 무엇이었을까?



아들 세바스챤은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어머니의 전화에 냉담하다. 어머니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 만난 그들. 아버지의 병을 확인하기 이전에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아들. 아버지 레미 역시 만만치 않다. 누가 오라고 했느냐는 반응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


함께 행복해야 할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함께가 아니라면 그들 각자의 삶은 행복할까. 아버지의 삶에 비추어볼 때 아들의 삶은, 아들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아버지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돈 버는 일이 삶의 전부인 아들의 자본주의적인 삶은 한심해 보인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야만적 침략의 역사라거나, 9.11 테러의 결과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자업자득이라고 가르치는 아버지, 자본주의적인 삶에 적대적인 아버지. 자유롭다 못해 방탕하기까지 하며, 돈 버는 일에는 무관심한 아버지의 삶 역시 아들에게 한심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아들은 아버지의 안락한 죽음을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 아버지를 위해 건물의 한층 전체를 병실로 꾸미는 데에는 정해진 규칙과 복잡한 절차가 있지만 돈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진통제를 맞아도 고통스러운 아버지를 위해 마약전담 형사를 찾아가 마약을 구하는 일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버지의 지인들을 불러 모으는 일도, 아버지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와 강의가 감동적이었다는 거짓말을 하도록 만드는 일도, 호수가의 아름다운 별장을 얻는 일도,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딸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일도, 그 모든 것이 세바스챤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비록 아버지의 삶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돈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 역시 편치만은 않다. 오직, 일과 돈을 위해서 살아온 그의 삶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버지 역시 죽음마저도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내지 못한 자신의 삶이 서글프기만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슬픈 일은 그들은 함께 행복했어야 할 가족이었다는 사실이 그 행복한 시간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아닐까?




영화 <몬트리올 예수>에서 종교적 위선과 물질적인 풍요라는 달콤함에 길들여진 인간들의 부조리함을 유머와 풍자를 통해 꼬집었던 감독의 시선은 <야만적 침략>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감독의 따듯한 시선을 잠시 벗어나, 그 부조리함을 부정하면서도 결국 넘어서지 못하고 떠나가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다가올 아이들에게 어떻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인간적인 부조리함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을지는 아들 세바스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병폐들을 넘어선 사회의 모습은 인류가 자본주의 단계에서 이루어놓은 물질적 풍요를 평등하게 누리는 형태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생산방식이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관리되는 사회를 의미할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삶의 방식을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생산방식이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관리되는 사회를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에 쓴 글입니다. 글이 거칠지만 영화 공유 측면에서 올려둡니다.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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