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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 자본주의 Gore Capitalism>라는 책을 읽다가 역자가 남긴 후기가 눈에 들어왔다. 역자와 같지는 않지만 같을 수 없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때문일 것이다. 역자는 여성이고 나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연령이나 거주지도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무엇이 비슷한 경험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비슷한 경험’이라는 말을 가로막는다.
역자의 말처럼 같은 공간을 살아도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육아를 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다르다. 경험이 다르다는 말은 사는 것이 다르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사는 일은 서로의 다름을 알아차리고 그 다름이 차별에 따른 고통이 되지 않도록 부단히 애써야 하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고, 차별을 말하며 드러내는 저항이 있었기에 겨우 경험했을 ‘차별하고 혐오하는’‘관계’의 현실을 다르게 살려는 것이기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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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와 나는 매우 다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느꼈던 것은,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면 ‘문학’, ‘중남미 여행’, 역자처럼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경험 윤리’와 같은 것들 때문일 것인데, 그 역시 역자와 나의 경험이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자의 후기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구나 생각했던 것은 여행 후에 사람들에게 받았던 질문과 그에 대해 역자가 밝힌 생각이었다. ‘중남미는 여행하기에 위험하지 않아요? 강도와 테러가 일상이라던데’, 나 역시 여행 후에 많이 받았던 질문이면서 그곳에 가기 전에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세계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중남미는 마지막 여행지라는 것이었다. 그 말의 의미는 여럿 있지만 여행하기 힘든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 힘듦의 이유에는 고도 3,000m를 넘나드는 지형이나 여행 인프라 같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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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그랬다고 말한 것처럼 나 역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중남미를 여행할 때가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이 점에서 나는 역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같은 경험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성별이나 연령, 서울과 비서울이라는 거주지에서 역자와 나 사이에는 비슷하지만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자가 여성으로서 경험한 언제 남성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서울보다 강도와 테러가 일상일지 모르는 중남미가 더 안전했다고 경험했듯이 나 역시 한국보다 중남미에 있을 때가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는 점에서 역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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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경험을 말하는 근거는 다르다고 여성인 역자는 말할 것이고 남성인 나는 동의할 수 있다. 또한, 역자가 말하는 그 안전함이 친숙한 일상이 아닌 낯선 곳이라서 경험했던 감각의 차이일 뿐일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곳이 일상이 된다면 경험과 감각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비슷한 경험을 말하지만 역자는 동의할까. 역자와 나의 경험에는 어떤 비슷한 점이 있을까.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차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차별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차별의 근거는 ‘살벌한 생존 경쟁의 구조’와 같은 것이다.
묻지 마 폭력이나 살인을 그런 구조로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먹고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니 각박해지고 차별이나 불평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 구조에 대한 생각과 감각도 성별이나 연령과 거주지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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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가 짭짤한 수입이 되기에 범죄계급이 되려는, 몸의 (性) 착취와 훼손된 몸이, 죽은 시체를 즐기는 행위 자체가 상품 가치를 지니는 ‘고어 자본주의’를 말하는 여성인 역자와 남성이면서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가까울 내가 차이가 아니라 동일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구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경험하는 것 또한 성별, 연령, 거주지 등이 다르기에 같을 수 없다면 다른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를 다르게 경험한다면, 다른 경험 그 자체가 차별과 혐오의 근거가 된다면, 자본주의를,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한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자치와 평등’, ‘사랑과 우정’에 기반한다는 미완의 공동체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한때 강철과 같이 단련되었다던 ‘혁명 정당’이 있었다. 자치와 평등,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강철 같은 혁명 정당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까. 경험과 차이를 넘어설 수 있을까.
22. 0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