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 브링크만 <철학이 필요한 순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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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브링크만 Svend Brinkmann은 ‘어느 순간에도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자유’다. 사람은 과연 자유의지를 갖고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호르몬 같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에 불과할까? 브링크만은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우리가 만든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관점은 결국 구체적인 삶의 차원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사회를 구성하는 도덕이나 법, 민주주의 같은 규칙이나 제도는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지닌 책임 있는 행위자로서 살아간다는 가정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 행동을 책임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설령 누군가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그 사람을 처벌하는 일은 부당할 것입니다.”(브링크만, <철학이 필요한 순간>, 202)
브링크만의 주장에 따라 모든 인간 행위는 자기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행위라고 이해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기에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도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방종이나 범죄에 대한 규정과 처벌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도덕이나 법과 같은 규칙이나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일 테다.
그래서일까. 브링크만은 자유와 관련하여 ‘오직 개인적인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사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의 관점보다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는 카뮈의 관점을 취한다.
“실존주의자라면 아마 자유는 선택과 행위에,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자유는 개인이 행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겠지요. 카뮈는 권리를 들먹이지 않고, 자유를 구성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주장합니다. ‘리베르테 오블리주 Liberte oblige’, 바로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말하는 거지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해야 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 자유롭다.’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브링크만, 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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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크만은 ‘자유는 욕망대로 사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추구할 가치가 없는 욕망이라면 스스로 억압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추구할 가치가 없는 욕망은 어떤 욕망이며 누가 결정하는가. 욕망을 스스로 억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억압할 수 있으며 왜 억압해야 하는가. 물음들이 인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듯이 책임은 ‘해야만 하는’ 의무와도 연결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욕망을 성찰하고 평가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의무를 말하지요. 충동에 휘둘리거나 단지 순간에만 집중해서 살게 될 때, 우리를 잠깐 멈춰 세우고 생각하는 성찰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의무에 대한 성찰입니다.”(브링크만, 211-212)
브링크만에 따르면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성찰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구할 가치가 없는 욕망을 억압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법과 제도와 같은 규칙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개인들은 자유로워지고 공동체도 유지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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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벌린은 <자유론>에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분한 바 있다. 브링크만은 카뮈가 ‘무언가로부터’의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무언가를 향한’ 적극적 자유와 손을 잡았다고 본다.
“벌린에 따르면 소극적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지만, 정작 우리가 원하는 것 자체를 누가 결정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거지요. 적극적 자유는 무언가를 향한 자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통제하는지, 또 우리는 무엇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거지요. 벌린은 이런 자유를 ‘자기 통제’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를 반성하고 자신의 소망과 욕망, 그리고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된 책임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브링크만 213-214)
브링크만의 ‘자유론’에서 책임과 의무, 자기 통제가 강조되는 것은 우리가 ‘공동체의 일부’라는 전제 때문일 것이다. 원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자유도 그와 같은 자유가 보장되는 공동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것은 중요하다. 공동체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브링크만이 주장하는 자유는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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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통제’를 통해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때 자유롭다’는 브링크만이 주장하는 자유는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의문과 ‘꼭 그래야 할까’라는 물음이 동시에 찾아들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고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브링크만, 215) 그렇다면, 그런 능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사람들이 올바른 자기 통제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공동체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윤리적인 형태의 양육과 교육입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바깥의 무언가와 관계하면서 자아를 ‘형성’ 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아와 내적 욕망 사이를 끊임없이 맴도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의 일부인지를 깊게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자유는 ‘자기-내면통찰’만이 아니라 ‘자기-외면통찰’이기도 합니다.” “나의 많은 부분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속한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감정이나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브링크만, 216)
브링크만의 자유를 위해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를 보호할 줄 아는 자기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는 윤리적인 형태의 양육과 교육’이 필요하겠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의 많은 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자(者)들은 ‘특권’을 가진 자들이다.
‘특권’ 자체가 없어져야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공동체의 대다수 구성원들의 ‘자기 통제’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특권층의 무책임을 문제 삼는 일을 스스로 통제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는 ‘자기 통제’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특권을 누리려 할 뿐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철저한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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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크만의 주장처럼 공동체에 대한 무책임한 ‘특권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육하고 교육하는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개인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전통과 역사, 공동체를 반드시 필요”(브링크만 216-217)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조적 관계적 맥락을 알고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요. 자아실현을 추구하느라 자아 형성은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란 애초부터 우리가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공동체 안에서 지혜롭고 헌신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자유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입니다.”(브링크만, 217)
개인이 스스로 자신을 존재하게 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려는 브링크만의 관점은 오늘날의 전 지구적인 ‘경제·환경·전쟁’ 위기를 야기하며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본독재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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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크만은 우리에게는 자유를 어떻게 정의하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를 도구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는 그냥 좋은 것입니다. 그게 개인의 행복을 증진하거나 국가 경제에 득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지요.”(브링크만, 219)
“자유가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으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직원에게 자유를 더 주고 책임을 위임하면 생산성이 증가하리라 가정하는 것이지요. 자유를 다른 가치를 지탱하는 정도까지만 인정한다. 만약 자유가 생산성을 크게 높이지 못하게 된다면 자유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입니다.”(브링크만, 217-218)
브링크만은 카뮈의 말을 빌어 자유의 내적 가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카뮈는 (…) 행복과 복지가 보장된다면 자유는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사회가 갑자기 바뀌어서 모두에게 만족스럽고 편안한 곳이 된다 할지라도 자유가 패배한다면 결국 야만이 될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자유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브링크만, 218)
브링크만이 말하는 자유의 수단화가 ‘생산성의 증대’와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의 자유가 희생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인간만 아니라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자유를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생산성 증대와 물질적 풍요를 위해 전쟁을 일삼으며 평화롭게 살아갈 자유를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러한 희생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내는 것 자체가 그와 같은 자유의 희생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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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자유란 어떤 종류의 자유일까요?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는 자유란 어떤 종류의 자유일까요?”(브링크만, 205)라는 브링크만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윤추구를 위해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생태계를 파괴하여 ‘경제·환경·전쟁’ 위기를 야기하는 자본독재국가권력에 저항할 자유, 그들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을 자유이다.
그와 같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브링크만을 따라 자기를 통제하여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공동체를 보호하는 책임을 다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가능하게 해 줄 가장 강력한 방법과 무기는 그러한 자유로운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나, 너, 우리일 것이다.
2022. 8. 19.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 이사야 벌린 지음, 헨리 하디 엮음, 박동천 옮김, 아카넷 2014.
-철학이 필요한 순간 /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다산초당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