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1.(생김새 따위가) 말끔하고 곱다.
2.(사람이나 그 성품이) 차분하고 얌전하다.
‘참하다’는 말이 사용된 예로 들고 있는 사전적 문장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어머니는 이번 추석에는 참한 색싯감을 데리고 오라고 성화시다.
숙희는 참하게 차려입고 외출을 했다.
참하게 생긴 희철이의 누이가 자꾸만 생각난다.
사전이 예로 든 문장에서 ‘참하다’는 말이 여성들(숙희, 누이, 색싯감)에게 쓰이고 있지만, 1번에서 ‘생김새’에 ‘여성’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점, 2번에서 ‘사람’이라고 쓰고 있다는 점, 실제로 일상에서도 ‘참한 신랑감’, ‘그 사람 일을 참하게 한다’와 같은 표현들도 쓴다는 점에서 ‘참하다’는 표현이 ‘여성’에게만 쓰이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말끔하고 곱다’는 어떤 ‘생김새’인지, ‘차분하고 얌전하다’는 어떤 ‘성품’인지,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듭니다.
물론, 사람들이 ‘참하다’고 말할 때, 떠올려지는 ‘생김새나 성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떠올려지는 ‘참한’ ‘생김새나 성품’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들만의 ‘참하다’ 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김새가 말끔하고 곱거나 성품이 차분하고 얌전하다’는 ‘참하다’는 말의 뜻을 사전이 정하고 있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보편타당한’ 사회적 의미는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보편타당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언어’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오히려, 모든 ‘언어’는 특정한 사람들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가집니다.
‘글과 말과 몸짓’이라는 언어가 항상 이데올로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항상 이데올로기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언어’도 ‘중립적이거나, 보편타당하거나, 절대적이거나’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언어든 ‘중립, 보편타당, 절대’의 이름으로 마치 그런 것처럼 특정한 사람들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회적 통념’과 같은 관념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어떤 ‘언어’의 ‘객관적’ 의미를 찾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그 과정은 언어의 객관적 의미를 묻는 일일 것이며, 그 과정에 따라 그 의미는 가변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과 같이 가치판단이 따를 수밖에 없는 언어 사용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옳은 것이,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그 누군가에게는 그른 것, 악한 것, 추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참하다’고 규정되는 기준인 ‘말끔하고 고운’ 생김새, ‘차분하고 얌전한’ 성품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그 기준 역시 절대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참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말일까요?
당신은 참한 사람인가요? 참한 사람이 아닌가요? 어떤 기준에서 그런가요?
당신에게 ‘참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만일, ‘참하다’는 말이 ‘생김새, 성품, 결혼 상대자’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참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면, ‘참하다’는 것의 기준은 누구의 것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저의 기준에서는 생김새나 성품으로 인해 참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평등한 세상’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참해 보입니다.
2024.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