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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r 15. 2024

체계와 내재 비판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읽기

아도르노가 보기에 체계 개념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보통 체계 그러면 연역 체계 그러니까 하나의 제일 원리로부터 모든 것들이 무모순적으로. 모순 없이 필연적으로 전개돼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대로 귀납하면 아무리 많은 사례를 들어봤자. 모든 인간이 다 죽는다는 얘기는 하나하나 인간도 죽는 걸 봤지만, 언젠가 또 안 죽는 인간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이거는 그래서 어떤 하나의 원리로부터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것과는 다른 구조다.      


헤겔의 경우는 연역 체계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구조다. 첫째는 제일 원리로부터 추론하는 그런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출발 원리는 그것이 진리일지라도 출발 원리인 한에서는 그게 전개되고 구체화되지 않은 한에서는 허위이기도 하다. 이런 주장까지 한 것이다.     


그러니까 헤겔의 경우에 어떤 출발 원리가 확고부동한 진리여서 그것만 제대로 따라가면 되는 그런 게 아니라. 그거는 허위일 수도 있다고 본다. 부분적이고 추상적이고 그래서 중요한 거는 결과라고 그랬다.      


결과이기도 하다까지 가야만 비로소 되는 그런 체계이기 때문에 요거는 진리가 보장된 제일 원리 그로부터 파생돼서 전체가 짜여 나오는 연역 체계 이것 개념과는 다르다. 거기에 무모순적인 전개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헤겔의 경우에는 그런 개념이 전혀 없다.      




오히려 허위로 이미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모순이 문제가 된다. 모순의 문제로 보자면 먼저 들고 나온 건 칸트다. 칸트가 변증론 개념을 [순수 이성 비판]에서 조금 정리한다. 칸트가 선험적 변증론 얘기한다.
 

그러니까 감성 내지 아도르노가 얘기하는 실증적 인식의 영역에서 뭔가를 하지 않고 그걸 벗어나는 실증 자료가 없는, 감각 자료가 없는 것은 이 오성 범주 가지고 정리하려고 들 때 그러니까 초감성적인 것들을 가지고 개념을 만들려고 할 때 끊임없이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자꾸 그렇게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틀린다는 걸 알아도 자꾸 그런다. 그러니까 시초가 있냐 없냐 이거는 있다고 얘기해도 말이 되고 없다고 얘기해도 말이 되기 때문에 모순이라는 것이다.     


모순에 이율배반에 빠지는데 근데 인간은 자꾸 시초가 있냐 없냐를 따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자유로운 존재인지 그냥 필연에 얽매여 있는 존재인지 입증이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해도 말이 되고 저렇게 말해도 얘기가 된다.     


그래서 모순에 빠지는데도 그거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런 사고를 한다. 그래서 모순에 빠지는 거는 필연이고 그런데도 인간은 그걸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자꾸 그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에게는 그래도 그거를 극복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라고 칸트는 문제제기를 했다. 그래서 현상계와 본체계로 나누어서 그러니까 인식에 관한 거는 현상계에서 다루고 그렇게 사고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자꾸 따져보고 싶은 영역에 대해서는 본체계, 물자체의 영역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나눠서 이제 대충 얼버무리고 만 거다.     


헤겔은 그걸 좀 벗어나서 감성과 오성을 딱딱 나누고 이성을 나누고 하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게 칸트 인식론과 헤겔 인식론의 근본적인 차이다. 칸트는 감성의 영역과 오성의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거고. 그걸 어떻게든 결합하기 위해서 도식도 끌어들이고 하지만 어쨌든 그거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봤다.     


헤겔은 오성 없는 감성 없고, 감성 없는 오성 없고. 이렇게 가는 거다. 그래서 같이 가는 거라고 보고 인식은 낮은 단계의 감성적 확신으로부터 그다음 단계 오성 지각 단계 오성 단계로 변화 발전해 가는 거라고 봤고. 그 각각에도 다 추상이 작동하고 있고 이런 것이다.     


감성적 확신이라는 것조차도 이미 추상의 선물이다. 그런 식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칸트의 인식론을 발판으로 하되 그걸 자기는 넘어선다고 자부한 거다. 그래서 거기에다 모순 문제도 그렇게 따질 때는 감성 영역을 넘어서면 거기서는 인식이 다 모순에 빠지느냐. 그게 아니라 인식 자체가 처음부터 모순덩어리라고 본 것이다.     




그게 헤겔과 칸트의 차이다. 그러니까 a = a 하고 있으면 인식이 안 된다. 동어 반복만 되니까 a = b로 가야 하는 게 인식의 기본 구조라는 거다. 그러면 이미 그 자체가 모순 아니냐는 a와 b는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다고 자꾸 얘기를 해 나가야만 인식이 전개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헤겔은 모순이 불가피하다는 것만 아니라 모순을 인식의 기관으로, 모순을 인식 내지 진리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게 변증법의 기본 원리가 된다. 이때 모순, 반명제, 안티테제 이것들은 명제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내가 찍어다 붙이는 게 아니라는 게 이른바 내재 비판. 그런 개념의 근본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것에까지, 그러니까 진리에 도달할 때까지 항상 주체가 관여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거는 객체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 객체를 떠나서 내 마음대로 이렇게 논리를 전개하는 게 아니라는 것, ‘객체가 척도’라는 것은 레닌의 변증법 개념과도 상당히 일치한다.


 그러니까 개념의 운동을 주관적으로 제멋대로 하면 그건 자의와 궤변이고 이걸 객관적으로 할 경우에는 변증법적이라는 것이다. 레닌은 그렇게 정리한 것이다.  




내재 비판은 헤겔에서 시작하지만 맑스의 경우에도 철저하게 내재 비판한다. 맑스가 내재 비판을 한다는 얘기를 여기서 조금 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으로 얘기하자면 맑스 [자본론]의 핵심이 결국 잉여 가치론이다.     

잉여가치론을 얘기할 때 맑스가 자본가들은 나쁜 놈이라 해서 사기치고 이런 얘기 절대 안 한다. 가치 이하로 깎아내려서 교환하고 이런 것 아니다. 가치대로 임금을 준다는 전제하에서 정당한 교환 관계라는 전제하에서 그런데도 잉여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얘기하는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 끝까지 따져보면 결국 잉여 가치가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가는 거다. 그래서 [자본론] 1권 마무리할 때쯤 보면 잉여 가치론이 쭉 전개된 결과로 자본가들이 가치대로 정당한 교환, 자유로운 교환 어쩌고 얘기하지만 실은 이게 착취고 사기고 결론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결국 그것이 어떤 실상인가 까지를 보여주려고 한다는 이게 내재 비판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재 비판의 본질은 상대의 논리에 맞서서 내 나름대로의 척도를 가져다 들이미는 게 아니라 상대의 사고와 더불어서 상대의 사고의 힘에 의거해서 상대를 논박하는 과정인 것이다.           



2024. 3. 15.



*위 글은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번역자(홍승용)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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