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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y 24. 2024

책속에서_날씨와 얼굴(2)

195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 시각

국감에 모여 앉은 저 어른들에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을까? 텍스트와 숫자 말고, 얼굴과

장면 말이다. 어떤 정책을 거론할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단어마다 자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누군가가 그들 마음속에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들이 내뱉는 문장은 지금보다

생생하게 뛸 것이다. 나는 ‘진짜 질문’과

‘진짜 대답’을 그리워하며 국회방송을 시청한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109]       



196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출간하기 위해 애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는 이동권 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디든 언어 없이는 가볼 수 없는 곳들

투성이다. 언어에서 멀어지면 타자와 멀어지고

자기 자신과도 멀어지게 된다. 그것은 세계와

멀어진다는 말과도 같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128]          



197

종종 헌 마음으로 글을 쓰는 나를 떠올렸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글쓰기라는 게

혼자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질문에

대답해준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성하는 게

글쓰기 같다. 그러므로 생소한 얼굴들에 대한

궁금함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런 당신이 되었냐는

질문을 멈추지 않고 싶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138]          



198

그 일을 같이 겪지 않았지만 인숙 씨의

이웃처럼 그 얘기를 전한다. 이때의 나는

아무도 아닌 동시에 여러 명이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다른 이의 이야기가 내 얘기처럼  

외워진다. 남의 이야기들로 내가 가득찬다.

나는 스스로를 이런 식으로 채우고 싶다.

나 아닌 얼굴들을 독자의 마음속에 그리고 싶다.

그건 계속해서 깊게 듣고 싶다는 의미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146]               



199

차별금지법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소수자가

된다. 생의 숙명이 그렇다. 우리는 모두

젊거나 늙거나 어리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158]               



200

한편 2022년 여름에도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물난리로 인해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과 그의 가족, 세 명이 사망했다.

기후재난은 모두의 삶에 드리워질 테지만 누군가는

특히 더 취약하게 겪는다. 불평등한 사회 지형은

급변하는 날씨 아래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이에 국가의 책임이 있는가? 물론이다. 침수위험

가구를 관리했어야 할 행정안전부와 지자체는

그러나 책임을 회피했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172]          



201

실패의 장소에서도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최재천 교수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많은 성숙한 숲은

불이 나도 잘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숲이 성숙해질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이 시대 지구별 동지들의 과제다.

발화제공자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산불에

접근하는 정치인과 실무자와 시민들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숲과 좋은 관계를 맺을수록 악몽의

반복도 줄어든다. 같은 악몽을 꾸었어도

같은 꿈을 버리지는 않는 서로를 찾을 때이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214]          



202

새해에는 글쓰기로 더 많은 얼굴을 비추고 싶다.

깊은 밤 초롱불 같은 원고가 되게끔 문장을 데운다.

내가 계속한다는 게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그들과 함께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쓸 용기를 낸다. 어째서 자꾸 정치적인

글을 쓰느냐고 묻는 독자님도 계시지만 오히려

나는 언제나 이것이 아쉽다. 내 글이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 더욱 정치적이기 위해

더욱 구체적으로 첨예해지려 한다. 생을 더 자세히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슬아, 날씨와 얼굴, 262]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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