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우리는 그리움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글쓰기는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 하려는 시도다. 그런 글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대부분 대체 불가능하다.
쉽게 대체 가능하다면 그리움에 마음 아플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그 대상의 세부 정보를 낱낱이 알게 된다.
다른 존재와는 어떤 점이 다른지, 언뜻 흔해
보여도 왜 그 존재가 이 세상에 하나뿐인지를
배워간다. 그 존재는 이제 결코 흔해질 수 없다.
구체적으로 고유해졌으니까. 이 구체적인 고유함을
기억하며 쓰는 글에는 수많은 디테일이 담긴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171]
204
쉼보르스카는 말했다. 자기가 쓰는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이라고, 그리하여
돌아가야만 한다고.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일이
멀어지는 걸 보며 계속 살아가는 사람 아닐까.
멀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며,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며, 하지만 결코 디테일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174]
205
솔직함과 글의 완성도는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하지만 별로인 문장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솔직함을 최대장점으로
내세우는 글에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솔직한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였다.
위험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지옥 같을 게 분명했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199]
206
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210]
207
할까 말까 하는 기로에서 나는 대부분
하기를 선택하며 살았다. 그러고는 물론
많은 후회를 해왔지만, 이번에도 애를 써보기로 했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214]
208
다음 일요일에도 찾아올 언니들을 위해
나는 칭찬의 말을 열심히 준비하고 싶었다.
최대한 정확한 칭찬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들보다 덜 살아서, 그리고 덜 알아서
열심히 읽는 수밖에 없었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224]
209
인간들은 이미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환경은 갈수록 나빠질 텐데,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232]
210
상대방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은 마음과
내 몫의 라면을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고 싶은
마음은 공존할 수 있다.
인간은 양가적이고 복잡한 존재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276]
2024.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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