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익숙한 일상의 공간을 떠나 낯선 공간에 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곳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자연·역사·문화 유산이 있는 곳, 즉 관광명소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행이 만들어 준 나에게 유명하고 소중한 곳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남미여행에서 페루의 마추픽추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그들이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신비한 자연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칠레에서 시인 네루다의 흔적을 찾거나 멕시코의 인류학 박물관을 방문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여행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에 못지않은 우연히 알게 된 커피가 맛 있는 카페나 음식이 만난 맛집,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생겨난 나만의 추억의 공간도 있는 것이다. 여행은 알고 있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미처 몰랐던 것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콜롬비아 보고타의 라 깐델라리아 지구, 카페 후안 발데스. 에콰도르 키토의 포치광장, 오타발로 마을, 도시 꾸엔카와 몬타니타. 아르헨티나의 도시 로사리오, 서점 엘 아테네오. 파나마의 파나마시티, 과테말라의 플로레스 마을. 멕시코시티의 인류학 박물관, 코요아칸 지구.
중남미여행에서 그 곳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인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나에게 소중한 공간들이다.
쿠바에도 그런 공간이 여러 곳 생겼는데, 아바나의 오비스뽀거리와 그 주변의 공간들이 그렇고 아바나가 내려다 보이는 모로성이 그렇고 플라야 라 에라두라에서 바다 바람을 맞던 곳, 산타클라라의 혁명카페도 그런 공간들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쿠바여행에서 소중하게 남은 공간은 뜨리니다드의 ‘카사 데 라 무지카(Casa de la Musica)’, ‘음악의 집’이다. 음악의 집이 있는 아르마스 광장과 그 주변을 거니는 것도 좋았는데 그 곳에서는 매일 저녁마다 2시간가량 음악 공연이 열린다.
음악공연도 좋지만 그 공간 자체가 너무 좋았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아 도시 마다 좀 느긋하게 머물지 못했는데 그 중에서도 뜨리니다드, 그 중에서도 여기 ‘음악의 집’의 음악을 좀 더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권하고 싶을 만큼 맛있었던 호스텔 차메로의 바다가재(랑고스타). 1쿡에 네 개씩 주던 머리 반 크기의 망고도 생각나고 돌바닥과 나지막한 각양각색의 집들이 만들어 내는 예쁜 그림들. 작지만 활기차면서도 아늑했던 도시의 느낌,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음악도 한 몫을 하는 듯하다.
‘음악의 집’도 그렇고 곳곳의 살사 클럽들, 살사를 배우기 위해 몇 달을 머물고 있다는 한국 분도 만났고
쿠바를 방문하려는 여행자들 중 많은 분들이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통해 경험한
쿠바의 음악을 그 이유로 꼽곤 한다. 정형화된 재즈와는 다른 쿠바만의 재즈필이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춤도 음악도 관심은 많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춤과 음악이 그들의 삶에 위안과 힘이 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고 뜨리니다드에서 그런 분위기에 흠뻑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은 여전하다.
2017. 9. 4.
사진들. 쿠바 트리니다드에서. 영진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