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진 Aug 11. 2023

밥과 자기 활동

1     


‘자본주의의 지속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탈성장 코뮤니즘’을 제시하는 사이토 고헤이 교수(이하 사이토 교수)의 연구자로서의 삶은 나에게 존경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계획인지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과 같은 거창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사이토 교수의 일상의 시간이 궁금했을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그에 맞는 실천을 해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사이토 교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사는 이들에게 관심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사이토 교수 때문만도 아니다. 꽤나 오랜 시간 묻고 답하며 나름의 실천을 해 오다 수년 전 도달한 나의 삶의 지향은 ‘밥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과 자기 활동’이었다. 마침 사이토 교수의 삶은 나의 삶의 지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사이토 교수는 “육아, 텃밭 짓기와 같은 사람과 자연을 돌보는 노동, 여행,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하며 그 결과물을 책으로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2     


사이토 교수와 나의 삶의 지향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내가 밥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노동 시간은 주 25시간이다. 그 노동시간 이면 밥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2023년 최저시급(9,630원) 기준이다. 나의 노동의 성격은 사람이나 자연을 돌보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나는 밥을 해결하기 위해 주 25시간을 사람이나 자연을 돌보는 노동을 하며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우선적인 자기 활동은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 활동이다. 연구 결과를 책으로 쓰는 활동이다. 사이토 교수처럼 맑스의 <자본>에 근거한 자본주의 연구와 책 쓰기가 되겠지만, 그 형식에서는 사이토 교수와 다를 수 있다. 경제학이나 인류학(특히,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기반한 자본주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나의 경우는 문학과 예술, 쿠바나 라틴아메리카와 관련된 자본주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사이토 교수는 연구와 저술 활동 이외에 사람과 자연을 돌보는 노동으로써 육아와 텃밭 짓기를 하고 여행도 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육아는 할 수 없다. 남성인 내가 출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육아를 통해 사람을 돌보는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연을 돌보는 활동으로 텃밭 짓기보다 식물 가꾸기가 흥미롭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소를 거의 먹지 않는 것으로 자연을 돌보고 있다.     


사이토 교수에게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한데 나의 경우는 다른 무엇보다 자기 성찰과 자기 발견의 의미가 크다. 집을 나서면 여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여행의 범위를 넓게 생각하고 있고 멀리 떠나는 여행은 주기적으로 한다기보다는 필요를 느낄 때 하는 편이다.     


여행과 관련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는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쿠바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체 게바라가 잠들어 있는 쿠바의 산타클라라에서 보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는 것이다.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실현 여부를 떠나 계획을 세우는 일은 여행의 시작이자 즐거움이기도 하다. 여행만 아니라 모든 계획은 그렇게 설렌다.          



3     


사이토 교수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의 지향인 ‘밥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과 자기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노동 및 자기 활동과 관련해서 해야 할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서 짚고 싶은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나의 삶의 방식이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될 수 있는 삶의 방식인가 스스로 묻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오랜 물음이 현재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이르게 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나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지도자가 되는 것이 직접적으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데 용이한 방식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사회적 지도자가 될 생각도 없었고 그럴만한 깜냥이 되지도 못한다고 여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들을 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 포럼에서 사이토 교수는 “탈성장에 마르크스 관점이 필요하다. 근로 계층 노동자 운동, 노조주의, 환경주의 사이에 연결이 필요하다”. 환경주의자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임금을 높이고 노동자들도 더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앞으로의 나의 자기 활동 목록에 포함될 수 있겠다. 나의 삶에서 새로울 것 없는 활동들이지만 사이토 교수를 통해서 그 활동들의 방식을 다양화하거나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사이토 교수도 ‘나’도 ‘우리’가 사는 세상 속의 ‘나’ 일뿐이다. ‘나, 너, 우리’는 각자 다른 처지와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전 지구적인 ‘자본독재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자기 삶’, ‘우리의 다른 삶’을 위해서 ‘자본주의’와 ‘국가’는 우리의 공통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자본독재’ 아래에서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우리의 삶이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다름을 알아차리는 것은 서로 같아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같아진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다른 존재들이니까. 같아져 봐야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2023. 7. 8.

작가의 이전글 나의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