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약속이나 한 듯 라디오에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흘러나온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비가 더 와야 할 텐데. 지나가던 동료가 말한다.
그 말 때문인지 ‘비라도 내리길 바랐던’ 그날들이 다시 생각났어.
경북 북부에서 시작해 영남 지역을 불태우고 지나간 화마火魔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돌보던 지인들이 힘겨워하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라도 내리길 바라는 것뿐이었던 시간들이었어.
내리는 둥 마는 둥 오고 만 비가 야속하게 느껴졌던 시간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떠올려진 ‘대답없는 너’라는 노래가 지인들의 힘겨움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었어.
비라도 내리길 바랬지
며칠이 갔는지 몰랐어
그저 숨쉬는게
허무한 듯 느껴질 뿐
이제 난 누구의 가슴에 안겨서
아픔을 얘기해야 하는가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만
들어줄 너는 없는데
(김종서, ‘대답 없는 너’ 중에서)
비가 와. 초가을처럼 쌀쌀했다가 한여름처럼 더워지기도 하지만 봄이라고 해야겠지.
봄에 내리는 비. 봄비라고 해야겠지.
그 때 지금처럼만 비가 왔더라면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
봄비 나를 울려 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 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신중현, ‘봄비’ 중에서)
2025.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