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과 진정성

by 영진

전체와 부분 양자를 다 갖춰야 한다. 그럼 어떡하면 되냐 할 때 아도르노는 지침이 있는 건 아니다. 보장되는 건 없다. 보장되는 건 없고 일종의 부도 수표 같거나 불량 수표다. 그렇지만 요구하는 것은 까다롭고 많다.


변증법적으로 사고함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독단에 빠지거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거나 하는 데에서 벗어날 그나마 유일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답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는 하나의 모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사고하라고 하는 것이고, 이게 맞는 인식이라면 기존의 인식에다가 빛을 쪼여 서 새로운 빛이 나게 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의 논리로 보면 ‘전형’이라는 리얼리즘의 핵심 개념이 그런 걸 추구했다. 사유 개별 경험이 개별 존재 사건을 통해서 보편적인 문제들로 나아가려는 그런 것이었는데 아도르노는 전형을 심하게 거부한다.


전형이 따로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개별자도 깊이 들어가면 그 안에 이미 현대사회가 너무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이 사회 전체가 드러난다. 이런 논리였다. 아도르노 논리는 어떤 개별자도 진정성 가지고 깊이 들어갈 때는 전체 사회가 드러나는 본질적인 문제가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루카치는 리얼리즘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현실의 근본 문제들을 들춰냄으로써 그걸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나 인식을 전파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루카치는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전형이라는 것은 적절한 사례들도 찾아야 하고 근본 문제를 다 보여주더라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떤 문제들을 더 보여주고 그 색깔이 다 다를 수 있다고 봐서 전형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굉장히 치밀한 사고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을 자연주의 수준으로 자꾸 깎아내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리얼리즘 개념을 버리지는 못한다.


그게 아도르노의 세계관에서 나온다. 위계질서를 부정한다. 짜임 관계로 간다. 그러니까 다 중심에서 같은 거리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한다. 그래서 어느 것이 전형이어야 될 필요가 없다. 다 어디서나 전형이 되는 것이다. 따로 전형이 없는 것이다.


전형, 리얼리즘 개념은 굉장히 전략적인 사고. 인간이 다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뭔가 집중해서 핵심적인 문제들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사태의 본질을 보여주는 갈등하는 인간들을 보여주고 그려내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삶을 통해서 그 사회의 핵심 문제들 갈등들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전략적인 거다. 작품을 통해서 이미 사회의 근본 문제들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줘. 이거였는데 똑같이 근본 문제로 들어가는데 아도르노는 아무 데서나 들어가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루카치는 전형적인 것들이 있다고 보는데 작가의 능력이다.


-하영진, '전형과 진정성', <도시의 무지개> 299-303쪽.




사태의 본질, 본질적인 사태를 보여주는 전형은 존재할 것이다.


다만, 모든 작가가 하나의 본질, 하나의 전형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하나의 본질, 전형에 동의하더라도 작가 자신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더 관심을 가지는 본질이나 전형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작가가 사태의 본질, 전형적인 사태를 얼마나 잘 드러냈는가, 형상화 했는가라는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할 것이다.


다시, 사태 자체에 대한 충실성을 말할 수밖에 없다.

사태 자체에 충실하다면 사태의 본질이, 전형적인 사태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도 사태 자체에 대한 충실성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2025. 8. 4.




도시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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