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십대를 돌아보며, 채움과 비움을 배운 나의 이십대를 들려주고파
초등학생 6학년,
너희들과 겨울바람을 볼살에 맞으며 썰매를 타고 내려왔던 것이 어연 6년이 지났다.
매 주일마다 너희와 함께했던 세월들도 잠시,
휴학이 끝난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매년 잠깐씩 볼때마다 키가 커지는 너희들을 보며
나 혼자만 아직 그 썰매장에 있는 것 같았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던 너희들은
이번에 보았을때 벌써 대학에 붙은, 스물을 코 앞에 둔, 멋진 청년들이 되어있었다.
너희들을 보며 세월이 정말 빠르다고 느낀다.
나도 그 새 나이 앞자리수가 바뀌었으니.
나이 앞자리수가 바뀐 만큼
삶의 무게와 같이 시간을 받아드리는 무게와 속도도 그 숫자만큼 조금 더 느려지고 무거워진 것 같다.
너희들의 해맑고 밝은 웃음들을 볼때 나의 어여뻤던 스물이 떠오르기도한다.
쏜살같이 지나가버렸지만 잡초같이 생명력있고
오뚝이 같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봉우리가 필까 피지 않을까 기대하던 나의 이십대를 돌아보며
너희의 이십대엔 너희 닮은 환한 꽃을 피우기 바라며, 몇자 적어보아.
삶은 정말 신기하다. 내가 노력과 시간을 부으면 안되는 것은 없었다.
안될 것 같고, 불가능해보여도, 앞이 어둡고 보이지 않아도.
삶의 다양한 공식에 이만큼 명확한 공식은 없다.
물론 운도 너무 중요하다. 아무리 노력과 시간을 부어도, 그 1%의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날개를 달 수 없으니. 그런데 그 1%의 운은 내 생각과 내가 짜놓은 타임라인때 오는 게 아니더라.
지금 오지 않으면, 언젠가 더 좋은 시간에 널 찾아올테니, 조급해할 필요없다.
그리고 말로 너희들이 원하는 걸 선포해라.
하나님께서도 세상을 말로 지으셨다. 너희 입술에 나오는 말 하나하나
다 힘이 있고 능력있다. 너희들이 꿈꾸는 세상, 너희들이 꿈꿔왔던 그 모든 것들,
너희 입술로부터 시작한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을 노력해서 성취하고 얻는 것.
삶의 정말 아름다운 공식이다.
이렇게 채우고 채우다 보면,
너희의 이십대엔 너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단단함으로 삼십을 맞이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채우고 채워도 계속 더 많이 채워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너희가 채우는 컵은 마시지 못할 물을 담은 컵일 뿐이다.
'사랑'이 없으면 너희가 빚는 그릇은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돌덩어리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너를 사랑하고,
보내주신 이웃을 예수님 사랑하듯 사랑하면,
너가 채운 그 모든 것보다, 갑절로 채워주심을 경험할 수 있다.
갑절이 웬 말인가. 갑절보다 큰 너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것으로 채워주신다.
'사랑'을 통해 너희의 삶이 풍족해지는 그 아름다운 경험을 하길 바란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도, 물질적으로 부족해보여도,
'사랑' 하나로 충분해지는 그 경험.
너희의 스물은 사랑으로 넘치고 넘쳐 흘러 너희가 채운 그 모든 것들이
너희 안에 고여 썩는 것이 아닌, 샘처럼 퐁퐁 흐르고 흐르길 바란다.
채움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비움이었다. 비워야지 채울 수 있다.
힘을 빼야 물에서 뜰 수 있는 것처럼,
힘을 빼야 다치지 않는 것처럼,
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비우는 연습은 내가 숨이 다 차봐야, 내가 다쳐봐야 그 중요성을 알게된다.
가끔씩은 그려려니,
내가 손해를 봐도 그려려니,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려려니.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을때, 하나님께 아무리 불러짖어보아도,
묵묵부답일때.
그때 너희의 삶에 힘을 빼고,
흘러가는 물에 너희 몸을 온전히 맡겨보는 스릴을 경험해보길 바래.
너희가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인도해주시고,
그 곳에서 만난 인연들로 또 다른 채워주심을.
'겸손'함으로 비워질때,
'용기'로 한걸음씩 나아갈 때,
'기대'감으로 너희 삶을 채워나갈때.
너희의 스물은 어떤 색깔로 채워질까.
너희의 스물이라는 물결은 어디로 너희를 인도할까.
다음에 만날 땐,
너희들의 어여쁜 스물에 그려진 그림들을 한가득 풀어주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