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캐나다에서 천국을 맛보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그 다른 풍경

by 한들눈나 이수현

한들이와 떠난 첫 해외여행, 캐나다.

개들의 천국이라고 불려 속칭 '개나다'로 통용되는 그곳은 우리에게 천국과 같았다. 여행의 목적이 '선진반려문화체험'이었는데, 이 목적에 매우 부합한 흡족한 여행이었다. 아니,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한국과 캐나다는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것에선 같았지만, 그 모습은 매우 달랐다. 그저 동양과 서양의 생활양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랐다. 누차 이야기 하지만, 한국에서 중, 대형견을 반려하며 살아가기란 여간 녹록잖은 일이다. (이건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도 있겠지만) 산책을 하는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다. 누군가 와서 시비를 걸거나 지나가던 개들의 사나운 짖음, 불편함이 역력한 시선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내가 한들이를 단속시키고 교육을 시켜도 모든 혐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산책은 항상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이렇게 점점 뾰족해지는 내가 싫었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시선들에 좌절했다. 같은 반려인끼리의 갈라치기에 지쳐갔다.



반려 문화가 이미 잘 정착된 선진국은 좀 다를까?



이런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한들이와 먼 캐나다로 떠났다.

신난다!!!



한국에서는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따가운 시선들이 캐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180도 바뀌었다. 한국 공항에서 출국할 때 얼마나 눈치를 보았는가? 당연히 반려견이 동반되는 공항이지만, 사람들의 찡그린 얼굴과 귀를 스쳐 가는 "왜 공항에 개를 데려 왔어? 아휴, 이렇게 큰 개를!" 이란 말들에 예민해져 있었다. 타인에게 최대한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바짝 긴장하고, 줄은 거의 10cm로 잡고(목줄을 잡은 건가 목을 조른 건가 싶다.) 출국 처리를 위해 복잡한 공항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국 출국 심사부터 비행시간, 그리고 캐나다 입국 시간까지 거의 14시간이 넘게 한들이는 켄넬에 있어야 하므로 수화물로 보내기 전 최대한의 시간을 밖에 있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까지 틈틈이 배변도 계속 시켜야 했다. 그러나 배변을 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사람이 가지 않는 풀숲에서 배변을 시킬 때도 행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심지어 추가금을 내고 예약한 비행기에 한들이를 짐으로 보낼 때도 항공사 직원들조차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한들이는 수화물로 보내어지기 때문에 짐처럼 무개를 재야 한다. 일단 빈 켄넬의 무개를 먼저 재고, 다음에는 개를 넣고 다시 잰다. 이때도 얌전히 곁에 앉아 있다가 명령에 따라 조용히 켄넬에 들어가는 한들이가 무슨 사자라도 되는 양 움찔거리며 좋지 않은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었다. 그 직원들은 표정에서부터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아니 나도 고객이라고요..?? 그러고는 '큰 개'라서 그물망을 해야 한다는 안내를 들었다. 그러나 이건 사실과 다르다. 강아지를 수화물로 싣는 경우 안전을 위해 모든 케이지에는 그물망을 하게 되어 있다. '큰 개'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안내를.. 뭐.. 뭐라고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미리 예약하고 돈을 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티켓팅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소리 한 번도 내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는 한들이와 스냅이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따스한 말이나 친절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직원은 규율대로 일관된 안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혐오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개를 무서워할 수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무서운 것과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무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아고, 무서워!" 혹은 "무섭게 생기셨네요."라고 그 앞에서 표현하는 것은 실례인 것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반사적인 표출이 아닌, 일부러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하기 위한 동작이나 적나라한 감정의 분출은 '두려움'을 가장한 '무례함'이다. 진짜로 무서운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딱 봐도 티가 난다. 산책하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줄을 짧게 잡고 내가 먼저 피해 가거나 그 사람과 최대한의 거리를 두고 조용히 지나간다. 사람은 서로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나! 아니 왜 저렇게 큰 개를!!!"

한국 공항에선 이러한 불쾌한 감정들도 당연하게 여겼다. 왜냐면 그렇게 한들이와 쭉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앞선 글에서 쓴 것처럼) 몸서리치게 깨닫게 되었다. 특히 캐나다 공항에서 출국할 때 그 진가를 보았다. 비행 전 직원들의 개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폭풍 같은 배려의 물결 속에 여러 확인 절차가 진행되었다.(14편 참고) 밴쿠버 공항에서 귀국 전 멈머들의 마지막 배변을 시키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한국 비행기가 내렸는지 공항 입구로 한국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린 그저 옆은 조용히 지나가는데 귀에 정확히 꽂히는 한국말. "엄마나! 아니 왜 저렇게 큰 개를!!!" 순간 꽃밭에 있던 내 멘탈이 바사삭 부서졌다. 스냅이네가 슬픈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언니.. 우리 진짜 한국에 돌아가나 봐요...

나나 스냅이네나 산책과 이동시 예절을 지키는 것은 같다. 같은 개들로 같은 견주가 같은 방법으로 걷는다. 그러나 그 반응은 극과 극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난무하는 거리에선 당연히 내 속이 예민해지고 그로 인해 강아지에게 짜증을 낸다. 그리고 나의 예민함은 강아지도 당연히 안다. 그러면 개도 같이 예민해지게 된다. 결국 악순환이다.


여기서 비롯된 내 개의 예민함을 계속되는 훈련을 통해 누른다. 참 미안한 일이다.........


아무리 훈련을 통한 사회화를 시켜도 타견의 공격적인 짖음과 자동줄 러시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무리 사회화 훈련을 해도 다짜고짜 길을 막고 소리치는 타인을 통해 한들이는 주눅이 든다. 아무리 돈을 쓰고 시간을 써가며 GCDS(Good Citizen Dog Scheme) - 반려견 예절교육 초, 중, 고, 심화반을 수료해도, 일반인이 훈련사 3급 자격증을 따고, 2급까지 따내도, 한들이가 반려견 순찰대에 합격하여 동네 곳곳을 누비며 안전사고를 예방해도 우리를 향한 혐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한국은 언제 변할까?
아니, 변하긴 할까?


"Hi, Sweeties~"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나는 내 개와 평온하고 안전하게 산책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우릴 봐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조용히 옆을 지나가겠다는 거다.


캐나다로의 여행은 떠나기 전의 수많았던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내렸을 뿐인데 이세계로 소환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세계로의 여행은 끝이 났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불행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평온한 산책이 가능함을 직접 겪고 보니, 안타까움이 더 크기만 하다.


한들이를 반려하면서 생각한 작은 꿈이 있다면, 한국의 행복한 반려문화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 운동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와 한들이의 하루하루를 올바르게 쌓아가며 그렇게 돌탑에 오늘도 돌 하나를 올려본다. 처음은 미비한 작은 돌 몇 개겠지만, 지나가는 누군가 그 돌탑을 보고 같이 하나 더 쌓고 쌓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등산로에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돌탑들이 여기저기 생기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그렇게 한국도 언젠간 모든 멈머에게 천국이 되길!



함박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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