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마지막 날!

안녕, 개나다!

by 한들눈나 이수현

어느새 열흘이 지나고 떠나는 날이 되었다.


전날 공항 근처로 숙소를 잡고, 아직 안 가본 밴쿠버 다운타운에 가기로 했다.

강아지 위주의 여행이다 보니 다들 가본다는 유명 관광지는 안중에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지인들의 선물 살 겸하여 다운타운에 갔다.


유일한 관광지 사진. 증기 시계

밴쿠버 개스타운은 200년 된 세계 최초의 증기 시계가 15분 간격으로 증기를 내뿜으며 시간을 알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명하니만큼 그 근처에 대형 기념품점도 있다고 하여 우리는 개스타운을 목적지로 잡았다. 그런데 가는 길이 밴쿠버 이스트 해스팅스 거리를 지나가는 경로였다. 해스팅스 거리는 마약 중독자들의 거리로도 악명이 높다. 이 사실을 모른 채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운전하다 보니, 갑자기 거리 분위기가 달라졌다. 창밖에 펼쳐진 광경은 믿기 어려웠다... 마약 중독자들이 바닥에 누워 있는 건 예삿일이고, 폴더폰처럼 접혀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몸을 떠는 사람들.. 그곳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좀비거리 같았다. 그 거리 멀지 않은 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관광지 바로 앞은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결국 한두 블록 떨어진 곳에 갓길 주차를 해야 했는데, 주차 자리를 찾으러 둘러보는 것도 무서웠다.


"그냥 기념품은 공항에서 살까요?"


하지만 씩씩한 스냅이네는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빨리 다녀오자고 했다. 3바퀴를 돌고는 상점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주차를 했다. 차 안에 멈머들을 두고 가는 게 너무 불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얼~른! 다녀올게! 형아랑 차 잘 보고 있어!"


말을 허공에 날리듯 하며 우린 발걸음을 재촉했다.

증기 시계 앞에서 사진도 찍고, 상점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쇼핑을 했다. 빨리 돌아온다고 했지만 챙길 기념품도 많고(지인들 줄 메이플 시럽을 잔뜩 고 보니, 메이플 보부상 같았다^^:::), 계산 줄도 어마하게 길어서 시간이 꽤 지났다. 차로 가보니 멈머들은 얌전히 그리고 안전히 차에 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강아지들과 동네 산책을 하고, 넓은 거실에서 개껌도 줬다. 마지막 날이니 그동안 가지고 있던 식재료를 소진하기에 바빴고, 이렇게 저렇게 짐 싸기에 여념이 없었다.



출국 당일. 긴 비행을 앞두고 강아지들의 배변과 스트레스 해소(라고 쓰고 체력 소모라 읽는다)를 위해 펫파크에 들렀다. 공항 바로 옆에 하나가 검색되어서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에 놀랐다. 한들이과 스냅이는 펫워커가 데리고 온 다수의 강아지들과 함께 넓은 곳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너희도 밴쿠버의 공기와 잔디를 기억에 남기렴.


공항에 도착하여 렌터카부터 반납했다. 한국에서 차량용 카시트를 가져갔는데, 덕분에 차를 흠집 없이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혹시 청소비를 요구할까 봐 미리 챙겨간 돌돌이와 물티슈를 동원하여 차에 개털 하나 없이 정리했다. 렌터카 직원들이 이제 그만해도 된다며 우리를 말릴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의 젠틀견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는 털 한 올도 용납하지 않았다. 근처 다른 직원들까지도 청소하는 우리를 구경했고, 차량용 카시트까지 가져온 우리를 신기하게 보았다. 청소를 끝내니 그곳에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엄지 척을 해주었다.(국위 선양?ㅋㅋㅋ 밖에 나가면 다 애국자! 암!)


차량 반납과 강아지들의 비행기 탑승절차 등을 고려하여 비행기 출발 시각보다 아주 이르게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공항 안에서는 목줄을 하고 강아지들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강아지들은 푸드코트에서 우리 발치에 엎드려 밥 먹길 기다렸다. 꽤 긴 시간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는데, 자꾸 마주치는 공항 직원들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두 멈머가 아주 의젓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밴쿠버 공항에서


시간이 다가와서 강아지들의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다.

항공사 측은 강아지들을 배려하여 가장 마지막에 탑승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강아지들이 캔넬에서 긴 비행을 해야 하니 천천히 강아지들과 쉬다가 와. 시간이 되면 내가 너희를 부르러 갈게. 대략 몇 시쯤이 될 거야. 이 근처에서 보자."


강아지 담당 직원은 정말 감동적으로 친절했다. 캔넬에 강아지를 넣고 무게를 재는 등의 절차가 있었는데, 두 멈머 다 '하우스', '기다려', '나와'의 간단한 명령을 잘 수행한다고 폭풍 칭찬을 들었다. 어깨가 으쓱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만난 캐나다 강아지들은 다 이 정도의 기본은 한다. 그저 무얼 해도 예쁘게 봐주는 캐네디언들이 고마웠다. 한들이는 공항에서 복잡할 땐 캔넬에 잘 들어가 쉬곤 했다. 그러던 한들이가 탑승을 앞두고는 켄넬 앞에서 딱 멈춰 서더니, '안 들어가개!'라는 표정으로 몸을 굳힌 채 나를 올려다봤다. 앗, 너 눈치챈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형아랑 옆에서 잘 있다가 한국에서 만나자.


긴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가 안정적인 랜딩을 했다. 우린 수화물 칸에서 나가는 한들이와 스냅이를 찍으려고 창가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습한 한국 날씨 덕에 창문은 뿌옇게 흐려져서 틈새로 살짝만 살펴볼 수 있었다. 멈머들이 잘 수송되는 걸 확인하고 장거리 비행에 지쳤을 멈머들에게 우린 뛰어갔다.

실려 나오는 멈머들 & 긴 비행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겠다고 일부러 앉은 창가 좌석(안습)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일장춘몽 같았던 열흘이 지나갔다. 스냅이네의 권유가 아니었으면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용감한 지인 덕분에 나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며 사진을 보니 그때로 빨려 들어간 것 같다. 그날의 공기와 햇살이, 그리고 캐나다의 따뜻한 친절이 아직도 내 곁에 머무는 듯하다.


개나다에서 마지막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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