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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Dec 21. 2021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인류에게 변함없이 중요한 숙제는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다. 날씨는 곧 인간의 생산활동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 1차 산업이 인류의 주요 활동이던 시절, 날씨 정보를 얻거나 조작할 수 있다는 제사장이 한 나라를 주무르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날씨는 꽤 근사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유체의 운동을 나타내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Navier-Stokes equations) 덕분이다. 하지만 해당 방정식은 아직 완벽하게 계산하기가 불가능해 엇비슷하게 풀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내일 온다던 비가 오지 않고, 오늘 맑다던 날씨가 흐리다. 그리고 그 엇비슷한 계산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지나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거쳐 훌륭한 바다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인간의 인지는 그렇게 완벽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에 엇비슷한 계산으로도 실제 바다처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일까. 디즈니가 <겨울왕국2>에서 보여준 광활한 쓰나미는 자신들이 갖춘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겨울왕국 2>의 장면. 컴퓨터그래픽(CG)임에도 꽤 사실적이다


이렇듯 시대가 흐를수록 인류는 자연의 구조를 좀 더 완벽에 가깝게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기계로 위성을 흉내 내 지구 주위를 돌게 만들기도, 나름의 신경망을 해석하고 구축해 학습을 흉내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각자도 그런 ‘흉내’를 시도했다. 과학시간 때 배운 ‘뉴턴의 제1 법칙(F=ma)’을 활용해 제시되는 ‘5초 후의 물체 속력’을 계산할 때 말이다. 고등학교 수준의 문제에는 ‘단, 마찰력과 공기저항은 무시한다’ 따위의 조건이 붙는다. 무시하지 않으면 계산이 한층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현실계는 ‘마찰력 없는 진공의 공간’이라는 온실의 공간이 아니다. 문제의 수준이 대학 이상으로 넘어갈 때는 그 조건이 점차 실재에 가까워지며, 공기 저항을 계산하고, 지구 자전을 계산하고, 마찰력은 물론 재료의 특성을 고려한다. 그렇게 최대한 많은 요소를 고려하고 계산에 포함했을 때 우리는 영화의 사실적인 바다 움직임을 관람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겨울왕국2>의 바다는 진짜 바다가 아니다. 만들어진 ‘바다’는 애니메이션이란 특혜를 입고 관객의 인지에 참작을 받았다. 진짜 바다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무엇이 만들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이 흘러 기술과 계산이 더욱 고도화되고,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 명쾌하게 풀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자연을 정확히 계산해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자연도 계산된 결과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정보를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이공계의 오랜 믿음이자 목표였다. 그 결과와 과정 속에서 인류는 문명을 이뤄냈다. 그리고 그런 전제는, 즉 수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은 무언가를 욕망할 수 있다. 저녁에 배가 고파져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다. 오늘은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배가 고픈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배고픔은 신체가 섭취 활동을 통해 혈당량을 충전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저녁에 바닥난 혈당량은 이미 점심을 먹을 때 정해졌다. 자동차에 주유를 하는 시점에 연비와 주행에 따라 언제쯤 다시 주유를 해야 하는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메뉴로 떡볶이를 선택한 것도 이미 결정된 것이지 않았을까. 신경계 시냅스의 전기 신호와 감각이 노출되는 환경요인 등을 모두 입력해 계산해낸다면, 저녁에 배가 고파 떡볶이를 먹을 것이란 걸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매트릭스 2 :리로디드> 중반부, 등장인물 메로빈지언은 다음의 말을 주인공 네오 일행에게 건넨다. 


“이 세상에 불변하는 건 단 하나야. 인과관계. 작용과 반작용. 원인과 결과.”


언뜻 듣기엔 단 하나라면서 왜 세 가지씩이나 말하나 싶지만, 뉴턴의 법칙인 ‘고전역학’을 가리킨 것이다. 결국은 세상 모든 것이 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고,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저녁의 떡볶이는 점심과 연결되고, 오늘은 어제로부터, 현재는 과거로부터, 미래는 현재로부터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에 모피어스는 '모든 건 선택에서 시작된다’며 반박하지만, 메로빈지언은 ‘선택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 만들어진 망상’이라 답한다. 즉, 선택과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착각하는 ‘선택’이란 것은 사실 ‘객관적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 

<매트릭스 2:리로디드>의 메로빈지언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 세상

작중 ‘매트릭스’란 공간은 강자의 손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인간의 육체는 매트릭스 바깥에서 기계에게 배양되고, 신경계는 프로그램에 연결되어 두뇌로 하여금 실제 세계에 산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매트릭스의 설계는 철저히 '감쪽같이 착각할 정도로 자연에 가까운' 수식(혹은 코드)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매트릭스 안의 모든 것은 수식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으리라.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 오라클은 매트릭스의 모든 일을 알고 있고, 또 알 수 있는 예언자다. 한번은 주인공 네오에게 사탕을 건네자, 네오는 '(내가 받을지 안받을지를) 이미 알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선택을 하냐'며 묻는다. 그에 답하는 오라클의 말은 감독의 생각을 대변한다.


"넌 선택하러 온 게 아니야. 선택은 이미 했지. 선택을 한 이유를 알아야해."


자아와 세계는 감각과 인지를 통해 형성된다. 인간의 인지로 가상과 실재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면 어떤 구조의 세계, 어떤 매트릭스로 느껴질까. 자아는 온전할 수 있을까. 인류 지식의 발전은 자연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복제하기 위한 방향에 놓여있다. 이렇듯 영화 <매트릭스>는 어쩌면 여느 SF보다 더욱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던지는 셈이다. 절대적으로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미래는 인과관계로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의 매순간 선택하는 행위는 대체 어떤 의미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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