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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Sep 15. 2021

넷플릭스 <D.P.> 리뷰



나는 원래 이 드라마를 볼 생각이 없었다. 예고편을 언뜻 마주친 적 있지만, 그다지 재밌어 보이지 않았다. 짐작되는 내용은 마치 '우당탕탕 신병 생존기'랄까. 여느 소비적인 콘텐츠처럼 그저 군대를 배경으로 한 서사, 부조리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내기보다는 주인공이 버텨내고 이겨내고 타파하기까지 하는 아케이드 판타지일 것 같았다. 군대 묘사의 클리셰인 폭력과 부조리는 그저 시련과 고난으로 존재하는 아케이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내가 굳이 그런 서사를 왜 보냐. 나는 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D.P.>가 공개되고 며칠 후, 내가 팔로우하는 누군가의 페북에서 <D.P.>의 인트로(오프닝 시퀀스)와 음악이 훌륭하다는 평이 올라왔다.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었다. 곧장 넷플릭스로 들어가 1화를 켰고 10초 만에 껐다.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이라는 병역법 제3조 문구를 보자마자 볼 마음이 싹 사라진 것이다. 마치 정말 싫어하는 사람의 증명사진을 본 느낌. 그러고는 몇 시간 후 밥을 먹으면서 다시 켜보았고 무사히 정주행을 마쳤다.


군대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 안준호의 대사 중


전반적으로는 재밌었다. 사실 나도 DP라는 탈영병 잡는 보직을 이번에서야 처음 알게 되어 새롭고 신기한 소재였다. 한편으로는 징병된 병사가 병사를 잡는다는 게, 마치 피지배국가 사람에게 식민지배의 하수인 노릇을 하라는 것 같아 정말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의 부당함'이야말로 작품으로 묘사하기 딱 좋은 지점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예고편에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군대에 오지 않았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군대의 온갖 부조리함을 정당케 하는 근원을 꼬집는 말이다. 국민이라면 행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 그렇기에 당연히 와야 하고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듯 군대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 폭력과 부조리가 유지되어 왔다. '군대니까 당연한' 그런 논리는 다양해야 할 '정상'의 기준을 통폐합하고 '폐급 병사'를 만들어 낙인찍기까지 한다. 어쩌면 차별이 만연한 사회구조의 폐단을 농축해낸 집단이 군대이리라.


내가 군대를 다루는 콘텐츠에서 기대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다양성'이란 가치는 개나 줘버린 시스템에서 강제로 2년 동안 복역하는 다양한 사람들. 부조리를 내재화하거나 시스템에서 낙오되어 '입대 전의 내 모습'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D.P.>는 나의 기대를 반 정도 만족시킨 것 같다. 조석봉(조현철)이라는 단 한 명의 캐릭터만이 그런 수난을 겪는다. 분명 사회에서는 정상이었던(오히려 정말 착했던) 사람이 기형적 시스템에서 피해를 입는 서사. 석봉의 뒤틀림이 극으로 치달을 때,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은 '예전으로 돌아가자'며 설득한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이 절대 치히로 경험 이전의 센으로 돌아갈 수 없듯, 석봉은 징병 이전의 석봉으로 돌아갈 수 없다. 군대에 가면 누구나 하는 생각일 것이다. 2년 넘도록 대학교란 집단을 떠나 있던 내가 과연 예전처럼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사이 커리어를 쌓고 있던 다른 동기들을 보며 '나는 어쩌면 영영 돌아갈 수 없는 실패한 전공생'이라 생각했었다. 석봉이 자신의 턱에 대고 당긴 방아쇠는 그런 부정적 생각을 한껏 응축해 쏘아 올린 것이다. 복학이 두려웠을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사실 한 인물이 망가져가는 큼지막한 스토리 외에 모든 설정이 아쉬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준호 아버지와 폭력을 참으며 살아가는 어머니 설정은 무비판적인 시각을 떠나서도 지겨운 클리셰다. 물론 3화 '그 여자'의 핵심인물인 문영옥과 연결하며 단순 설정을 넘어 서사를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장면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클리셰를 답습하며) 재미없게 그려진 건 감점 요인일 수밖에.


그 외에도 모든 캐릭터 설정의 현실감이 아쉬웠다. 황장수(신승호) 캐릭터도 못내 아쉬웠다. 극 초반에 준호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비웃지 말고, 어머니께 잘하라고 준호를 타박했으면 어땠을까. 준호가 '어머니랑 사이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라고 해도 '그래도 너희 엄만데 너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는데 니가 그러면 안되지'라며 유교 심판자로서 준호를 구타했으면 어땠을까. 현실에서의 악인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타인의 다양한 사정을 본인의 시각으로 마음껏 편집하고 본인만의 정의구현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군대 안에서 부조리를 많이 저지른다. 사회생활 운운, 효도 운운, 질서 운운. 언뜻 한쪽의 시각에선 정당해 보이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주로 부조리의 핵심 인물이었다(실제 집단 내에서 장수처럼 순수하게 나쁜 놈은 드물며 덕분에 다른 원흉들이 '나는 착하다'며 안심한다).



황장수에게도 그런 본인만의 철학이 있었다면 더욱 현실감이 꿈틀대지 않았을까. 이는 결코 악당에게 서사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쩌면 조석봉의 경우도, 극 후반의 석봉은 악당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계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우리가 학생 때는 이렇게 서사 중 성격이 변하는 캐릭터를 '입체적인 인물'이라 배웠다. 하지만 진정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란 이미 여러 가지 모순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나쁨과 동시에 착한, 착함과 동시에 나쁜 사람 말이다. 이런 캐릭터를 포함한 각본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이 <비밀의 숲>과 <라이프>의 이수연 작가와 <밀양>이나 <시>의 이창동 감독인데, 내가 그런 디테일한 작품을 보는 바람에 보는 눈이 높아져 버린 것일 수도.


어쨌든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야 관객에게 '여러분이었으면 어땠을 것 같냐'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현실을 재현하여 성찰을 끌어낼 목적이 있는 작품이라면, 얼마나 현실감 있게 재현하느냐가 실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석봉만 하더라도 '오타쿠'라는 특수한 (동시에 스테레오타입 강한) 설정이 있다. 특이한 캐릭터일수록 매력적이라 극을 잘 끌고 갈 순 있겠지만, 현실과는 멀어진다. 현실에선 십덕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자살하고, 현실에선 황장수만큼의 쓰레기가 아니더라도 가혹행위를 하는데 말이다.


내가 군대에서 느낀 소름은 그런 것이었다. 비극이 그렇게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구조 자체가 부조리했기에 나조차도 피해와 가해, 방관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구조(시스템)의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었다. 잘 적응함과 동시에 적응하지 않아야 했다. 나는 <D.P.>가 관객을 가해자나 피해자로 만드는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시도를 하길 기대했지만, 석봉의 대사를 빌려 나머지 사람들을 방관자로 만드는 데에 그쳤다. 물론, 가장 대중적이고 안전한 방법이긴 하다.


즉, <D.P.>에서는 가해자를 특정하고, 피해자의 서사는 비극적으로 그려내 가해를 강조하며, 나머지 캐릭터는 방관자로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의 캐릭터들은 삼분법으로 단순히 나뉘지 않는다. 황장수 같이 애초에 글러먹은 본투비 가해자도 있지만, 피해의 트라우마를 가해로 극복한 사람, 상처를 회피한 결과 방관자가 된 사람 등 다양하고 복잡하다. 오히려 둘만 있을 땐 한없이 친절해 보이던 호열이, 부조리 앞에서는 '내가 잘해준다고 너네 해야 할 일(악습임)을 안 하면 안 되지'라며 얼차려를 줘야 현실적이다. 만약 그렇게 그려낸다면 관객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 새끼 도대체 착한 애야 나쁜 애야?! 사실 현실에서 착한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은 드물지 않나. 다 그냥 착하면서 (동시에) 나쁜 사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수연 작가가 이걸 엄청 잘한다. 비숲 짱. 


이렇듯 설정은 아쉬웠지만 나머지는 꽤 좋았다. 주인공인 안준호에게 평범함을 부여하는, 그렇기에 여러 대한민국 남성 중 한 명일 뿐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오프닝 시퀀스도 좋았다. 또한 1화의 마지막, 준호가 박성우(고경표)에게 주먹질하는 부분의 편집이나 연출 자체도 대단히 좋았다. 음악도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높다고 느껴졌는데 프라이머리가 OST를 맡았다고 한다. 



내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지만, 내 생각처럼 만들어졌다면 지금만큼의 대중적 인기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군대 이야기인 <D.P.>가 꽤 인기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정해인과 구교환 덕분일까..?). 자고로 군대 이야기는, 가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선 공감하기 힘들고, 간 사람들은 그냥 군대를 싫어하기 때문이다(간 사람들이라도 보게 하려면 '푸른거탑'처럼 웃겨야 한다). SNS에서는 <D.P.>가 현실적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폭행까지 있었던 당시(작중 시점인 2014년)의 군대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다. 하지만 나는 앞서도 언급하듯, 현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과 위의 서술이 '진짜 군대는 다르다'며 1년도 채 있지 않았던 내가 군부심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으레 자랑인양 말한다기보단, <D.P.>를 '현실'이라고 칭하는 순간 그 뒤로 가려지는 많은 또다른 비극들에 내가 울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가깝다. 


아무튼 <D.P.> 속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다. 부조리의 논리와 악영향은 보기보다 거대하고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군대 바깥으로까지 삐져나와 스멀스멀 사회를 돌아다닌다. 석봉만큼의 피해를 받았음에도 제대 후 실제 PTSD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하고, 장수만큼의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제대 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옳지 않다 생각했으나 타성에 젖어 부조리의 논리를 내재화한 채 사회로 돌아온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선임들과도 좋은 사이로 잘 지내며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던 나도 속으로는 적잖은 충격을 얻어 제대 이후까지 트라우마로 고생했으며, 사회에서는 즐겁게 잘 살던 사람이 군대에 와서 폐급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보상심리에 기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군대에서 '잘 적응'할수록 남성성과 사회성을 획득하게(된다고 스스로 믿는다) 되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비가해자는 나뉠 수 있지만, 모두가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다. 이 모두가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비극이다. 하지만 군대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점이야말로 군대가 변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된다. 나는 군대가 선진화될수록 분명 사회 갈등의 총량 또한 줄어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성공해야, 군대를 가지 않는 사람까지 모두가 문제점을 알게 될 수 있기도 하다. 국방부가 이 드라마를 불편해한다고 하니 좋은 징조다. 시즌2가 나온다면, 좀 더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파고들며 서사에 다양한 사람들을 녹여내길 바란다. 다양한 사람을 그려낼수록 현실감이 넘치며 더욱더 군대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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