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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Sep 16. 2023

당신 닮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잠들지 못한 마음들이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설핏 잠든 탓에 닮은 모양만으로도 깨어나버리는 마음들. 어르고 달래도 다시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칭얼거리는 마음들. 그 마음들이 어렵고 두렵다.


 저건 귀신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일 뿐이라고, 저건 그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옷을 입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마음을 붙잡고 그런 말들을 중얼거린다. 마음의 가슴께를 토닥이며, 평화를 불어넣으려 애쓰며. 다독이는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평화는 슬프게도 마음에 닿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백사장에서 움켜쥔 한 줌 모래처럼, 닿지도 남지도 못하는 마음이 시큰시큰하다. 바닥으로 떨어져 흩어져버린 평화는 어떻게 다시 쓸어담을 수 있나.


 카페에 당신을 닮은 모양이 있었다. 키도, 뒷모습도, 웃음소리도. 이미 몇 해가 지나고서도 난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더라. 당신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그 모양에 마음이 벌써 옥죄어 오고 있었다는 것을 당신을 알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아니 그것이 당신이긴 했는지.

 당신이 아니라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 그 모양을 여러 번 확인하려다 돌아서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양이 되어 카페를 나섰다. 당신은 이 주변에 오래 살았었으니까. 아마 당신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공기 중에 사뭇 맴돌았다.


 어제는 사담을 하다가 수축과 이완의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 움츠려서 글을 쓰자니 등허리가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다 들은 말이었다. 당신의 모양을 보고서는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그 대화를 떠올렸다.

 풀어져야 움츠러들 수 있고, 움츠러들어야 다시 풀어지며 자랄 수 있다. 마음도 딱 그 모양이 아니었을까.

 마침 한창 늘어지던 마음이, 무엇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한없이 풀어지던 마음이 뭉쳐져 밤의 글이 되고 있다. 당신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그 모양만으로 그렇다. 이제야 잔뜩 구겨지고 움츠러든 마음을 펼쳐 덜어놓듯 글자들을 적는다. 움츠러들고 다시 펼쳐지면서. 잊은 듯하던 당신은 여전히 모양만으로도 나를 자라게 한다는 것. 당신의 모양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는 것. 나는 이제 사랑 없이도 당신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얇은 막 없이도 조금이나마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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