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감독 영화 '세계의 주인' 감상평
도망치고 싶었던 영화는 처음이었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괴롭고 고통스럽고 지치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존재해야만 하는 이야기고 이미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니까.
또다시 세상이 참 싫어졌지만 그렇기에 이 악물고 살아내야겠고. 억지로라도 더 나아가야겠다. 다른 사람들도 영화의 마지막엔 희망이 생각났으면 좋겠다. 주인이 고민 끝에 내린 미래의 모습이 사랑이었던 것처럼.
보는 동안 작든 크든 인물의 행동이나 성격을 자연스레 판단하게 되는 나의 태도가 평소보다 불쾌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은 어쩌면 상처에서 배어 나온 고름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린 영원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타인의 상처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래도 이해하려고 눈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가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
인간은 아름다운 결말을 추구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한 문장일까. 종종 당연한 사실이 칼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모든 고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만 같다. 영화를 다 보고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 맴돌았다. 우린 아름답게 승화되지 못하는 것에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멋대로 인과를 지어내는 것 같았다. 원래 세상은 이랬고 아무래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참 소중하고 유일한 영화. 언젠가 우리의 세계에 필연 히 드러나야 했던 세계.
가장 힘들었던 씬은 아무래도 세차장에서 주인이 괴로움에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슬프게도 어둠과 소음이 지배하는. 세차장동굴을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만이 아프다고 말해도 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종종 어떤 문제에 관해서는 지독하게 고요한 세상. 그 세상이 가장 시끄러워 어떤 이들은 입을 닫게 된다
'주인, 세계와 하나가 된다.'
대본집의 끝에 나와있는 문장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면서 전혀 알지 못했던 피해자의 세계를 접하게 되고, 피해자와 자신의 세계가 결국 같은 세계였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마치 차가운 금속이 맨살에 닿는 것 같았다. 세계의 온도가 맞춰질 때까지 우리는 아플 것이다. 아파도 끌어안고 버텨야 한다. 너와 나의 세계는 어쨌든 하나이니까. 우리는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니까. 이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플 때마다 아프다고 말해줘, 우리 한 바퀴 더 돌까?
세계는 여전히도 많이 흔들려야 한다.
세계의 주인은 아직 살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