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작아져도 돼 그리고 그냥 사는거야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감상평

by 하비비

희망은 버려. 그리고 힘내 !


언어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괜히 마음이 가지 않는 문장이었다. 사람은 모두 대충이라도 사랑과 희망을 좇으며 살지 않나? 요새 다들 눈알이 빠지도록 사랑을 외치고 희망을 바라보며 살지 않나? 이것을 위해 우리는 삶을 지독스럽게도 이어나가는 게 아닌가. 곰팡이같은 희망이 피어난 동앗줄이라도 잡고싶다. 쳐다보지 않고 살아가는 건 싫어. 희망을 버리는 행위 자체도 희망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게 아니냐며 캐묻는 미워빠진 사고방식 속에서 영화를 틀었다.


주인공 '영군'은 왜 자신을 싸이보그라 주장할까?

첫 번째, 할머니를 잡아간 ‘하얀 맨(의료진)’들을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은 마음과 동정심이 결탁하여 완성된 작품일 수도 있겠다. 죽이고 싶지만 죽이지 못하는 것, 그들에게도 할머니가 있을 거라는 사려심은 결국 영군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지 못했다. 영군은 대신 스스로 무기가 되기로 했다. 자신의 손가락이 떨어져나가고 기괴하게 벌어지는 턱 관절로 하얀 맨을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영영 공격할 수 없는 영군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산물.

두 번째로는 할머니의 시간을 책임치는 라디오를 영원히 수리할 수 있는 싸이보그가 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 나 아무래도 싸이보그인 것 같아.' 라고 말하는 어린 영군의 말이 아프게 들렸다.


자신에게 벌을 주려는 마음이었을까?

싸이보그라 주장하는 영군은 정신병동에 입원해서도 내 밥은 '건전지'라고 하며

인간의 밥은 먹지 않는다.


그 때 '일순'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일순은 영군과 같은 정신병동의 환자인데, 밥을 먹지 않는 영군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쓰는 인물이다.

일순에게는 다른 사람이 뺏기기 싫어하는 습관이나 행동을 훔치는 능력이있다. 일순은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훔치고 다니는 것 같았다. 너의 빈 공간이 나로 인해 생겼음을 알기 위해, 미완성의 네가 나로 인해 다시 채워짐을 느끼기 위해 자꾸 소중한 것을 훔치는 것 같았다.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는 일순의 특이사항은, 자신이 잊혀지는 것 같을 때마다 몸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이 점이 참 재밌고 슬펐다. 아마 세계에서 소멸하는 것만 같은 기분과 닮아서 그랬던 것 같다.

종종 세상은 너무 커 보인다. 자신의 손가락도, 다리도 가끔 너무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꼭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인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사라지는 기분이다. 희망도 사랑도 모두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때 ! 정신병동 복도를 걷던 어떤 이모가 스위치를 켜준다.


희망은 버려, 그리고 힘내 !


미웠던 문장과 손을 잡는 순간. 기억에 오래 남을 것같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날엔 상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날 때가 있다. 그래 이왕 없는거 희망 부스러기까지 버려버리고 또 살아가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어떤 소멸은 종종 희망으로 치환되기도 하는구나. 또 까먹고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자꾸 고장나고 밥을 먹지 않는 싸이보그인 영군을 고쳐준 일순.

결핍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서로를 살아가는 이야기.

평생보증 A/S를 해주겠단 것처럼 영군도 할머니에게 그런 싸이보그가 되고싶었던 건가 싶다.

자주 사라졌던 사람아 너는 점을 선으로 바꾸는 사람이야 그러니깐 밥 먹자 너도 나도

맘대로 작아져도 돼 그리고 그냥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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