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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in Son Feb 12. 2023

[북리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제목처럼 나에게도 삶을 아끼는 시간이 많이 생기기를

매번 책을 읽지만,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는 굼벵이처럼 게으른 내가 올해는 책을 읽은 후 짧게라도 남기기로 했다. 그랬지만 올해 세 번째 책부터 기록하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님을 개인적으로 알지만, 작가님의 책에 등장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고 (다음엔 등장하고 싶다...) , 밑미 일로 만난 동료 사이에  가깝다. 근데 내가 느끼는 작가님에 대한 내적 친밀감은  다르다. 강아지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벌러덩 배를 까듯이, 보통은 낯을 가리는 내가  작가님에게는 여러  그랬다. 작가님이 이상하게 편했다. 나를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가끔 작가님에게 업무적으로 연락할 때도 삐져나오는 장난질을 자제했다. 농담을 퍼붓고 싶고, 놀리고 싶고.

근데  책을 읽고 알았다.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맞네. 순수하지만 순진하지 않은 사람. 사람을 쓸모로 대하지 않는 사람. 일할  요령 부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애써본 사람. 자신의 삶을 정성스럽게 쓸고 닦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남들이 보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반짝임을 찾아내는 사람. 그래서 타인의 숨겨진 애씀을 이해하는 사람. 책에서 내가 발견한 이런 사람은 작가님이었다.

"(어르신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하나하나 말씀을 들어보면 지금의 선 자리가 최선을 다한 자리구나 싶어요.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주인공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 누구에게나 지금 선 자리가 최선을 다한 자리"

page 83~84

이 책은 밤마다 리추얼 할 때 읽기도 했고, 퇴근길에도 종종 읽었다. 난 타이밍에 따라 읽는 책을 정하는 편인데, 이 책은 여러 타이밍을 치고 들어오는 강한 매력이 있었다. 한 번은 퇴근길에 책을 읽다가 코가 찡긋해지고, 눈물이 그렁해서 멋쩍은 기억이 있다. 갑자기 와사비를 잘못 삼킨 것처럼 책이 사람의 코를 맵게 만든단 말이지. 그런 장면이 있을 때마다 책을 접었더니 책이 많이 접혀있었다. 좋아하는 책일수록 책이 더러워지는데, 이 책도 그렇게 더러워졌다. 좋아하면 돌변해 자꾸 치대고, 만지작거리고 싶고, 표시내고 싶은 나의 강아지 같은 성격을 자꾸 끌어내는 책이다.


작가님의 지난 삶을 내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지만, 참 열심히 사셨구나 싶다. 일도 참 야무지게 잘했을게 보인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지워질까봐 기록을 오래 해온 것도 삶에 대한 정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나 자신의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서 악바리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살았을 모습이 나와 겹쳤다. 아마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인숙'씨로 등장하는 신지님의 엄마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가 삶을 아끼며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사랑을 놓지 않는 엄마만큼은 살려고 노력한 게 아닐까. 삶의 고난을 척척 이겨내면서도 자식에게 주는 사랑을 아끼지 않는 엄마의 자식들은 대체로 그렇다. 굳이 고생스럽게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엄마를 떠올린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살아냈는데...'라고 하며 삶을 사랑하는 태도를 계속 기억해 낸다. 인숙 씨에게서 난 금자 씨를 여러 번 보았다.


인숙 씨가 평생 가장 아낀 걸 안다.  삶이다.
내 몫으로 온 것이니 아꼈고, 어떻게 더 쓰일지 모르니 아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가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적 없다는 걸 안다. ~ 인숙 씨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전에 살 방법을,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었다. p148


밑미 리추얼 메이커인 신지 님은 <기록 서랍 만들기>라는 리추얼을 하고 있다. 매일 자신의 삶을 기억하는 리추얼인데, 가끔 장난기를 멈추고 '리추얼 리딩하기 힘드시죠?"라고 물으면 '그건 안 힘든데..'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겸손한 말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은 리추얼을 즐겁게 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이 삶의 목격자가 되고 싶은 걸까. 그러니까 골목길을 걸을 때, 천변을 산책할 때, 나는 환한 낮에도 손전등을 들고 걷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삶의 평범한 순간들에 동그랗게 빛을 비추어 여기 이런 장면이 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다른 이들도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쓰는 사람으로서 드물게 욕심이 날 때는 바로 그런 순간"
page 91


신지님은 손전등 같은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일상을 구경하면서, 그 안에서 반짝임을 찾아내고 있을 거니까. 책에는 나라면 그냥 쓱 하고 지나칠 상황도 잘 포착된 일상의 순간들이 많았다. 그걸 읽는 재미도 참 컸다. 글에서 농담을 하려고 드는 작가님의 개그욕심도 행간에서 다 읽혀서, 그렇게 주고받고 싶었던 농담을 서로 건네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에세이를 좋아하는지 내 기준을 알았다. 자기가 겪은 작은 세계의 이야기를 큰 세계처럼 부풀리는 에세이는 읽다 보면 재미가 없어서, 소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읽다가 '음, 꼭 그렇지만은 않는데'라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걸 말로 잘 설명할 재주는 없었다. 근데 책에서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았다.


삶에서 무언가가 올 때 좋은 것만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만큼은 나이가 들었다. 체에 거르듯이 좋은 것만 취할 수는 없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다른 것에 대해 늘 생각한다."


삶을 체 거르듯이 살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 그런 사람의 에세이가 좋다. 이 책처럼. 삶을 살아내는데 좋은 것과 함께 오는 불편하고 완전하지 않는 것도 안아주는 사람의 이야기가 좋다. 그런 사람의 글은 부드럽지만 핵심이 있고, 열정적이지만 우아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좋은 걸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작가님의 남편 '강'님과의 연애 스토리도 재밌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체에 거르지 않은 삶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친밀한 사이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해지려면, 나의 거르지 않는 모습을 나눌 수 있어야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 부부를 부러워하며 다시 기억한다.


책을 마지막으로 덮으며 작가님이 추천해 준 OST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들었다. 사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OST라 작가님과의 공통점을 자꾸 찾아내며 신나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 이 작가 많이 좋아하네...


내가 좋아하는 STAY ALIVE를 한 곡 들으며, 매일 하루 온전하고 충만하게 살아야지.



내가 매 순간 여기에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매 순간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발췌하며.


첫 책 기록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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