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정신력이야
내가 좋아하는 말, 아니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냥 해봐"
새로운 일을 만났을 때 그냥 주저하지 말고 해 보라고 말한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일에 주저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새로운 일에만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꿈이 있어야 도전을 하는 거라 믿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하루하루가 도전이었고 시도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하고 사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매일 집을 나서는 일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상급학교로 진학하려고 준비해서 시험을 보는 것도 모두 새로운 시도이다.
어떤 시도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어떤 시도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모든 시도들을 받아들이며 산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거든. 지고 실패하는 데 익숙해서"
"그걸 사람들은 정신력이라고 불러. 지는 게 두렵지 않고, 실패하는 걸 겁내지 않아 하는 그 단단한 마음을 모두 갖고 싶어 한다고."
우리는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 자존심 상해서, 귀찮아서, 마음이 불편해서 포기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내 삶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하나의 경험이 쌓이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일이 많다. 엄마로서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아내로서 집안일도 해야 하고, 학교에 나가 학생들도 가르쳐야 한다. 행사도 해야 하고 음식강좌도 연다. 매일 하는 일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통역도 하고 번역도 한다. 많은 일을 하지만 그렇게 특별히 뛰어나게 잘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냥 한다. 할 사람이 없어서 하기도 한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냥 시도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항상 처음은 있다. 실패할 때도 있다. 하다 보면 실패가 쌓여 조금씩 전문가가 되어간다.
나는 모든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신중한 남편은 가끔 나에게 뭐가 그렇게 쉽냐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잘해 낼 수 있는 일만 하려고 한다면 나는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냥 집에만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랬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야 생각해 보니 나는 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한번 해 봐. 안 되면 다른 거 하면 되지.”
일을 쉽게 생각하는 엄마와 함께 아이들도 시도에 대한 두려움이 약간은 줄어든 것 같다.
아이들이 악기를 배울 때도 운동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냥 시도해 봐. 하다 힘들면 그만해도 괜찮아. 시도해 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포기해도 괜찮아. 하지만 시작하면 6개월은 해 보고 결정하자. “
그렇게 아이들은 피아노도, 드럼도, 기타도 배웠다. 밤톨이는 피아노를 시도해 보았지만 힘들어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어떤 악기를 시도해 보고 싶냐고 이야기를 나눈 후 드럼을 시도했다.
드럼을 배운 건 한국에 잠깐 들어갔을 때 한 달 배운 게 전부다. 그리고는 학교 밴드에 들어가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대학교에 가서도 교양과목으로 음대에 수강신청을 해서 타악기 수업을 들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드럼공부를 계속했다.
개미는 피아노를 좋아했다. 피아노와 일렉기타를 배웠다. 일렉기타는 학교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몇 개월 배운 것이 전부였고, 혼자 유튜브를 보고 연습했다.
악기를 배운 시간보다 워십밴드를 하면서 연습한 시간이 많기에 아이들은 음악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농구만 좋아하는 녀석들이 태권도를 처음 시작할 때도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태권도 선생님의 권유가 있어서, 6개월만 배워보고 힘들면 그만둬도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국 검정띠까지 딴 후에 그만두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은 힘들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재미도 있는 법이니까.
아이들이 대학을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미국으로 대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한국으로 대학을 보내려고 했다. 비싼 학비를 감당하며 다른 나라로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원서라도 내 보라고 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그냥 원래 계획대로 한국으로 대학을 가면 되니까.
별로 기대를 안 했던 터라 대학지원도, 서류 준비도, 모든 것을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게 했다. 그렇게 기대 없이 시도한 미국대학에서 큰 아이가 4년간 장학금을 받았다. 외국인들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장학금도 주고, 학교아르바이트도 제공하고 부족하면 학교에서 학자금 대출도 해 주는 곳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형이 그렇게 대학을 가니 둘째도 시도해 보겠노라고 말했다. 2년 후 밤톨이도 그렇게 시도해서 형처럼 4년을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밤톨이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영화석사를 하고 싶어 했다. 대학원을 갈 때도 스스로 모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여 여러 군데 영화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지만, 밤톨이는 LA 할리우드와 가까운 영화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합격은 했지만 그 학교에서만은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풀장학금을 주는 다른 학교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이른 새벽에 밤톨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내가 혹시 몰라서 마지막으로 그 학교에 꼭 가고 싶다고 이메일 보냈어. 꼭 가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장학금 달라고 했어. 근데 지금 답변이 왔는데, 펠로우쉽으로 장학금 지급한대. 나 생활비만 있으면 그 학교 갈 수 있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학교에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도한 밤톨이는 결국 LA에 있는 영화학교에 입학하고 말았다.
나는 밤톨이에게 학교에서 만든 영화를 작은 영화제라도 출품해 보라고 권유했다. 학생이 만든 영화라서 수상은 못해도 한번 출품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밤톨이는 대학교 다닐 때 만든 첫 영화를 여러 영화제에 출품하였고, 두 개의 작은 미국영화제에 공식초청(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작품으로 찍은 단편영화가 3군데의 미국 내 영화제에 공식초청 되었고, 한 군데에서는 최우수 학생영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올해 10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작은 국제영화제에 공식초청되어 영화제기간에 한국에 있는 한 도시의 CGV영화관에서 밤톨이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밤톨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내 영화가 드디어 한국에서 상영된대. 한국에서 내 영화를 볼 수 있게 됐어. 첫 번째 상영이라 너무 좋아. 엄마, 기쁘지 않아?"
큰 영화제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영화만을 뽑는 작은 영화제이고, 16분짜리 단편영화지만, 한국에서 상영한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된 것 같았다. 학생이기에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고 배울 것이 많은데, 험난한 영화감독의 길을 가야 하는 밤톨이를 보며 늘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한국에서 첫 발걸음을 내디딘 밤톨이는 엄마가 그저 자랑스러워하길 바랐다.
이제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시도하며 산다. 물론 여기에 쓴 몇 개의 이야기처럼 지금까지 시도한 것들이 모두 좋은 결과를 가져온 건 아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실망할 때도 많았다.
한번의 시도로 성공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실패너머에는 또 다른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패해도 "다시 한번 해 볼게."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히려 나는 나이가 들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사는 그곳에는 아이들이 살아가기 너무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걱정을 이야기하면, "엄마, 유튜브 너무 많이 보지 마. 그리고 걱정하지 마. 세상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아. 이게 아니면 다른 거 하면 되지."라고 말한다. 이제 아이들은 나보다 더 초연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별로 없어졌다. 그런데 전화를 할 때마다 아이들이 나를 독려한다.
내가 활동적이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해 왔던 것처럼 나도 매일매일 뭔가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마음이 울적한 날, 밖에 나가는 일을 시도해 본다.
마음이 힘든 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시도해 본다.
일에서 벗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나를 위한 쉼을 가져본다.
무엇이든 시도하는 일 다음에는 기분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대단한 성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의 시도는 의미가 있으니까.
그것이 정신력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