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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파마가 좋아!

세월의 흔적을 가리는 아줌마 파마

by 하빛선

"엄마, 엄마는 왜 아줌마파마 안 해? 이제 아줌마잖아."

"어머, 얘는. 요즘 누가 아줌마파마를 하니? 그리고 엄마는 아줌마파마 안 좋아해."

"엄마도 아줌마파마 해. 예쁘잖아."


둘째 아들 밤톨이는 아줌마 파마를 좋아한다. 원래 좀 창의적이고 특이한 아이이긴 하지만, 가끔 엉뚱한 말로 나를 어이없게 만든다.


밤톨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할머니손에서

만 4살까지 자랐다. 루마니아로 이사 온 후에는 2년에 한 번 여름방학에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가면 늘 할머니 집에 머문다. 우리 아이들은 유독 할머니를 좋아한다. 우리 집은 시댁과 친정이 다 같은 동네에 있었다. 결혼하면서 내가 친정동네에 집을 얻었고, 이후에 시댁이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 덕에 아이들은 두 할머니의 품에서 자랄 수 있었다.

처음 루마니아에 왔을 때 밤톨이는 외할머니, 친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할머니들을 그리워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한국에 들어가면 꼭 할머니집을 방문한다. 우리 가족이 할머니집에 머물지 않고 다른 곳에서 지내야 할 때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집에 가서 혼자 계신 할머니와 순대국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들어드리다 잠도 자고 온다.


개미와 밤톨이의 할머니사랑은 하나가 더 있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헤어스타일이다. 한국의 할머니들은 거의 대부분 짧은 아줌마 파마머리를 즐겨한다. 지금은 할머니파마라고 해야 하나.

요즘은 각자 개성대로 세련되게 머리를 하지만, 옛날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30-40대부터 줄곧 아줌마파마를 해왔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엄마는 늘 같은 머리, 그 파마머리 그대로였다.

그러니 개미와 밤톨이의 눈에도 할머니의 머리는 늘 같은 헤어스타일이었겠지. 거기에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록달록 보라색 분홍색 빨간색 옷을 즐겨 입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도시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지만, 변두리 동네나 시골장터로 나가면 거리에 온통 우리 할머니 같은 분들이 북적인다. 파마머리에 알록달록 블라우스를 입고 편하고 뭉툭한 단화를 신은 할머니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할머니를 보고 "엄마, 우리 할머니 아냐?"라며 달려가 얼굴을 확인한다.

우리 할머니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아이는 멋쩍은 듯 말한다.

"엄마, 왜 할머니들은 다 똑같은 아줌마 파마를 해? 옷도 다 비슷하고."

한국의 할머니들 패션이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내가 봐도 너무 비슷하긴 하다.


오랜 시간 해외에서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아이들 눈에는 신기하게 보일 수도, 멋지게 보일 수도 있겠지.


몇 년 전 개미의 대학졸업식 때문에 미국에 갔을 때 일이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밤톨이가 있는 시카고로 가서 기숙사 짐들을 정리해 방학 동안에 있을 곳으로 옮겨주어야 했다.

시카고에서 만난 밤톨이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엄마아빠를 보러 온 밤톨이 머리가 아줌마 파마머리가 되어있었다. 곱슬곱슬한 머리가 안 그래도 통통한 밤톨이 얼굴을 더 동그랗게 만들었다. 나는 너무 웃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줌마(할머니) 파마를 한번 꼭 해보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봉준호감독머리인가? 사람들은 영화감독 같다며 멋있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정말 아줌마 같았다. 머리를 좀 자르면 안 되겠냐는 엄마의 제안에 밤톨이는 이제 충분히 할 만큼 했다며 머리를 자르는데 동의했다. 결국, 미용실로 데려가 다시 단정하게 머리를 잘라주었다. 그 이후 개미 또한 아줌마 파마를 한 적이 있다. 아줌마인 엄마도 하지 않는 파마를 두 녀석은 좋아하며 경험했다.


아줌마파마, 아니 이제 아줌마들은 절대 하지 않는 그 파마머리는 우리 어머니세대에는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인기머리였다. 앞집을 봐도, 뒷집을 둘러봐도 아줌마들은 거의 다 그 머리였다.

나는 줄곧 그 머리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왜 엄마들이 그 파마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된다. 나이가 들어가니 긴 머리가 점점 불편해지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진다. 그러다 보니 머리숱이 적어져 머리가 힘을 잃고 착 가라앉는다. 휑한 정수리는 어떻게 하지?

우리 엄마들은 이렇게 머리로 드러나는 세월의 흔적을 감춰보려고 이 파마를 하지 않았을까.


나도 요즘은 머리가 많이 빠진다. 가르마 부분과 정수리가 휑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카락이 너무 가늘어서 파마가 잘 되지 않아 평생을 통틀어 3-4번 정도 시도해 본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끔 나도 파마를 해야 하나 생각한다. 파마라도 해서 내 세월의 흔적을 가려볼 까 싶기도 하다.

그럼 우리 밤톨이가 아줌마파마 머리 엄마를 더 좋아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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