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는 세월이었습니다. 야속한 시간은 흘러 이제 저는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던 시간과 계절, 그 시절의 내음새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상처받은 마음, 아무것도 몰랐던 사회 초년생,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세상과 부딪히고 깨지던 막무가내 풋내기 하경대를 사랑으로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울했던 저의 20대를 빛내주셨던 두분이 계셨기에 빛으로 희망으로 이제까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새벽, 이별의 목전에서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금 반추해봅니다. 가족이 모여 앉아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누군가의 잔소리가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감사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쉬움도 남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되바라진 성격 탓에 제대로 표현조차 하지 못한 것 같아 이제야 편지로라도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너무나도 감사했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느낄 수 있었던 이 곳을 앞으로도 평생을 살아가면서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그동안 두분의 모습에서 저의 나약함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파편처럼 흩뿌려진 인생이건만, 지금까지의 저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달려왔던 걸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또 다른 인생의 막을 준비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여전히 많이 부족합니다. 아직도 옷걸이에서 풀썩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날들이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어쩌면 최근 저는 우울증, 혹은 아직도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여나 부족했던 저의 언행이나 행동으로 기분이 언짢으셨던 적이 있더라고 너그럽게 용서해주길바랍니다. 다만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특출나진 않지만 미약하게나마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일상의 사소함에 젖어 중요한 것을 잃지 않고 항상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성경도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무엇 하나 기다려주지 않고 인생이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 듯 저도 이제 그동안 고강동에서의 기억을 놓아줘야 할 때인 듯합니다. 먼 훗날 저희가 함께 했던 순간들, 치열하게 토론했던 이곳의 현장이 추억으로 남은 것으로 족하겠지요. 안녕히계세요.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