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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Sep 30. 2024

남문

도시에 남문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많다. 여기는 수원 남문을 말한다.

오랜만에 남문을 나갔다. 예전에, 그러니까 지금 삼성전자 앞이 논이었을 때, 그래봤자 30년 전이다. 남문을 나간다는 것은 두 가지를 위해서였다. 메이커를 파는 가게가 남문에 있었다. 금강제화에서 산 랜드로버를 뒤축을 갈아대면서 신고 신었다. 아디다스는 사지 못하고 보기만 하고 오고는 했다. 영화관이 남문에 있었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사랑과 영혼을 봤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도로가 눈으로 덮였다. 너무 와서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동수원사거리까지 걸으니 그때 버스가 왔다. 또 남문을 나가야 할 때가 있었다. 명절에 남문시장에서 장을 봤다. 못골시장이라고 주로 불렀는데 지금은 영동시장, 남문시장,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못골시장이라고 이름표가 붙어 있다.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83, 83-1번을 타고 집에 왔었다. 물론 수원 살면서 남문이어야 되는 일들이 두 가지만은 아니었다. 한복을 맞추거나 돌 반지, 떡을 할 때도 남문을 나갔다. 한의원도 남문에 있었고, 회갑 잔치, 젊은이들이 만나는 곳도 남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동네에 〇〇슈퍼 같은 커다란 가게가 생기고, 영통지구가 개발되면서 더 이상 남문 나갈 일이 없게 되었다. 흥덕과 광교가 조성되면서는 더더욱 안 나갔다.

      

가끔 통닭 거리 가서 치맥하고 성곽을 걷기는 했다. 아, 보건약국 들르러도 갔다. 그 약국 지금도 있다. 간혹 남문을 가더라도 차를 타고 지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시에 여기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예전 그대로네 하는 감회(?)에 젖곤 했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화서동으로 출퇴근하면서 또 부리나케 2년 남문을 다녔다. 그러고는 뜸했다.

     

그 남문을 나갔다. 오랜만에 나갔다. 차 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남문을 목표로 갔다. 오늘처럼 특별한 일정이 없는 토요일은 마냥 게을러진다. 늦은 아침을 먹고 켜 놓은 TV는 집중하지 않아 혼자 떠든다. 무료해진다. 청명산에 갈까? 광교저수지 (호수라는 말보다 저수지가 더 좋다) 한 바퀴 돌고 칼국수 먹자. 아냐 광교산이 좋잖아? 목표가 부정확할 때 흔들리는 것은 하루 일정만이 아니다. 그러다 둘 다 자연스럽게 ‘남문 나가자’가 나왔다. 그래 오늘은 남문이다. 버스로 가자. 남문이 가까워질수록 버스는 거북이걸음이다. 길은 여전하다. 그 많은 전철 여기 뚫으면 ‘대박’ 날 텐데.

     

지동초등학교 앞 버스 정류장 이름이 미나리꽝이다! 반가워라. 시장이 이어져 있다. 지붕을 맞대거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영동시장은 포목이 많다. 한복, 옷 가게가 많다. 못골시장은 먹거리다. 통닭, 생선, 고기, 떡가게가 길 양쪽으로 이어져 있다. 남문시장은 맛집이 즐비하다. 떡볶이, 만두, 칼국숫집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좋다. 팔달시장은 생활용품 파는 가게가 많다. 지동시장 순댓집은 다 맛있다. 고추 빻고 제수용품 살 때는 지동시장으로 간다. 족발도 좋다. 시장에 오면 다 먹고 싶다. 순대, 어묵, 팥죽, 통닭은 어때? 그건 맥주랑인데…. 족발 먹을까? 그런 건 이따 먹고 지금은 냉면 먹자. 예전부터 가는 냉면집이 있다. 내외부가 여전하다. 물냉면 하나 비빔냉면 하나 시켜 반반씩 나눠 먹었다.


팔달산 한 바퀴 돌고 내려와 장 보는 코스로 하자고 했다. 남창초등학교 옆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이 학교 유명했다. 부잣집 아이들이 다녔다. 입구에 들어서자 함성이 들리고 작은 앰프로 시청 여성청소년과인지 문화예술과인지 담당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무대 뒤로 청바지, 흰 셔츠, 우쿨렐레를 든 알록달록 짧은 치마 여성들이 많다. 가을 축제구나. 보고 가자. 풀밭에 앉았다. 맘마미아 팀이 나온다. 어이쿠, 박자와 음악이 자유롭다. 그래도 좋다. 열심히 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팔달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예전에 산드래미가 논이었을 때, 도청이 매산동에 있을 때는 저 멀리 용인 석성산까지 지평선이 넓었다. 올림픽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사방팔방이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파트가 지평선이 되더니, 이제는 재단해 놓은 것처럼 단조롭다. 그 많은 인계동 주택과 연립이 아파트로 변했다. 화서동도 마찬가지다. 산 아래 지동까지 재개발된다면 팔달산은 더 이상 탑 산이 아니겠구나 싶다. 7부 능선에 남쪽을 바라보고 누운 지석묘는 그대로다. 성곽 위아래로 길이 많다. 이것도 신기하다. 이 작은 산에 길이 몇 개인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수십 개? 셀 수 없이 많은 오솔길이 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길 중 하나를 걸으면 된다. 그래서 좋다. 도로 가운데 고립된 팔달문하고 성곽을 이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을 보려고 내려왔다. 영동시장부터 보기 시작했다. 시장에 오면 원래 계획보다 많이 산다. 지금도 그렇다. 장바구니가 넘쳐 비닐봉지째 들다 보니 다섯 개째다. 아직도 멀었단다. 결국 두 봉지를 더 샀다. 하나만 더…. 또? 배낭을 메고 올걸. 딱 하나만 더 사자. 두 봉지 더 샀다. 사과 한 봉지. 옆에 감자도 좋아 보였단다. 하나 더. 쑤셔 넣어도 여섯 개는 따로 들어야 했다. 집 가는 66번은 오늘따라 붐빈다. 가득 양손에 들고 한 손에 카드 태그하고….

집에 와 곯아떨어졌다.     


남문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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