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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Sep 25. 2024

공부 잘하는 아이의 특징

겸손

1. 어느 때보다 무더웠던 여름을 더운 줄 모르고 넘겼다. 몇 년을 깔고 앉아 뭉그적거리던 원고를 더 이상 모셔둘 수가 없었다. 먼지 털어 내고 다시 펼쳐 들었다. 이번에는 완성하자. 뭐가 됐든 만들어 보자. 출간하자. 다행히 받아준 출판사가 있었다. 함께 만들어 보잔다. 작품성, 상품성 그런 것 모르겠다. 일단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에어컨 아래 밤낮으로 자판 두드렸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받아들일 때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큰 병에 걸린 환자는 처음에는 부정하다-거부-무시-분노-수용의 단계를 거치며 자신의 상황을 인식한단다. 이번 여름 비슷한 감정의 과정을 경험했다. 내 글이 최고인 줄 알았다. 누구든 내가 쓴 글을 읽고 감동받지 않을 수 없을 줄 알았다. 이런 문장을 어떻게 만들어 냈지? 내가 봐도 기가 막히다. 아 감동받아. 이렇게 훌륭한 글을 묵혀 놓는다는 건 우리 교육계에, 국민, 아니 인류 역사에 잘못을 저지르는 거야. 널리 읽혀 모두가 인간이 되게 하자.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게 하자. 알리자!

      

출판사에 보낸 원고를 두 번째 주고받을 때까지 그런 줄 알았다. 세 번째….

어? 아닌가? 아냐?

사정없이 까지는 아니어도 까이기 시작했다.

‘작가님 이 부분은 이렇게 하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표현은 정중했으나 속내는 매웠다.

‘이 정도 글 아무나 쓸 수 있어요. 이것도 글이라고 자꾸 같은 수정을 반복하게 만듭니꽈?!!’

직역하면 이럴 것이다.

이걸 세 번째에 알아챘다.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겸손하지 못했다.

     

2.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성 중 하나가 겸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민지야, 이 문제의 답은 이건데”

“아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시은아 이 문제의 답은 이건데.”

“예? 왜요 선생님, 그게 왜 틀려요?”     

시은이는 자신의 오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리거나 쉽지 않다. 심지어 문제가 잘못되었다고 따진 적도 있다. 둘 다 두뇌는 비슷하다. 아니다. 시은이가 더 나은 것 같다. 그렇다면 성격 차이인가? 성격 중 어는 부분이 다르지? 아하. 민지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잘못했다 싶으면 바로 수정한다. 시은이는 일단 우기고 본다, 상대가 일부러 져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이기려 든다. 양보? 그런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거야. 손해 볼 짓을 왜 해?     

두 사람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졌고 그대로 굳어졌다. 민지는 시은이 볼 수 없을 만큼 멀어져 갔다.

     

3. 강현이의 문제 제기를 골칫거리고 받아들일지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일지는 내 몫이다. 사실 귀찮기도 하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꼭 따진다. 지금까지 해 온 것을 굳이 왜? 강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싫은 마음이 더더 많다. 오해하려 든다. 한 호흡 늦춰 마음을 가다듬고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겸손에게 도움을 청한다. 겸손이 그런다. 강현이 입장이 되어봐. 아,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구나. 고맙다 겸손, 아니 강현아.

겸손은 공부만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겸손한 마음가짐은 정서적 안정, 끈기, 정신적 맷집, 책임감, 경쟁심, 인내심, 자기반성 등 학업에 필요한 요소들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우쭐대는 심리를 가진 아이들은 좋은 성취를 거두기 어렵다. 학습의 가장 핵심적 동기는 바로 경쟁심이다. 그런데 이것은 ’건전한 경쟁심‘이어야 한다. 자기보다 더 잘하는 학생들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학생들은 심리적 부담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거나 경쟁을 회피할 수 있다. 경향신문 2024.6.25.화 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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