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고향에 가면 가을 소득이 가득하다. 어머니가 곳간과 작은 방 하나를 채우신다. 쌓아 놓은 쌀 포대, 땡볕에 말린 고추, 고구마, 콩이 있다. 하우스 속에는 팥, 참깨, 들깨가 있고, 처마에 마늘도 걸려 있다. 미처 따지 못한 감은 절반이나 매달려 있다. 대부분 2차 3차 가공한, 즉, 김장, 된장, 고추장 등 완제품으로 싣고 오지만 그냥 가져오는 것도 있다. 이번에는 호박을 통째로 들고 왔다. 차에 실을 걸 마당에 모으면서 노랗게 잘 익은 호박 하나를 들었다. 냉면 그릇만 해서 장식용으로 좋겠다 싶어 챙겼더니 주먹만 한 거 어디 쓸 거냐고 다른 것도 가져가라신다. 맷돌만큼 큰 것을. 트렁크가 가라앉도록 싣고 올라왔다. 호박죽을 끓였다.
넷플릭스를 켜 놓고 호박 껍질을 벗겼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영화는 오래전에 봤다. 이번엔 드라마다. 영화에서 매슈 매코너헤이의 능수능란함에 반했다가 뺀질거리는 모습이 미웠다 했었다. 드라마는 미키 변호사 역을 하는 마누엘 가르시아룰포가 연민을 자아낸다(?). 어쨌든 화려한 그들만의 사회, 능력 있는 그들 모습이 장면마다 넘친다.
미키 변호사 사무실에 입을 한껏 벌린 물고기 한 마리가 걸려 있고 그 아래 IF I’D KEPT MY MOUTH SHUT, I WOULDN’T BE HERE (입 다물지 않았기에 이 자리까지 왔다.)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낚시에 걸린 저 물고기는 입을 크게 벌리고 덥석 물었겠지. 입 꼭 다물고 자유로운 유영이나 했더라면 지금 저렇게 박제되지 않았을 건데.
말을 참 예쁘게도 하는 이가 있다. 모임에 가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자랑했더니 그 뒤로 만나면 글쟁이라고 한다. 어이 글쟁이 내가 쓴 것 읽어봐. 다른 친구들은 ‘작가님~’이라고 하는데. 작가님 소리 듣고 싶어 이런 말 하는 것 아니다.
저렇게 말하고 싶을까?
아는 이 중 한 사람은 자기 아들을 지칭할 때 꼭 ‘준기(가명이다!!) 새끼’라고 한다. 물론 아들이 말썽을 부리거나 ‘새끼’ 소리 듣는 생활하지 않는다. 나이도 서른 살이 넘었다. 자기 아들 말하는데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다 함께 웃어 주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난 웃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웃을 일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말하고 싶을까?
한 달에 한번 산을 다니는 모임이 있다. 전철로 닿는 거리에 살기에 주로 수도권 산을 다닌다. 한 친구는 꼭 ‘야’라고 한다. 이름도 있고, 어렸을 때 별명도 있고, 하다못해 김 사장이라는 좋은 호칭도 있는데 꼭 그렇게 부른다. 한번은 술김에 상일이가 말했다. 야, 너는 왜 꼭 야라고 하냐? 응? 바뀌었냐고? 그대로다. 야, 얼른 와, 야, 뭐하냐? 야 야 야
좋은 말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말하고 싶을까?
골목에 사는 젊은 친구가 있다. 국화가 예쁘게 피었네요? 저거 서리 맞으면 지저분해요. 요즘 차가 많이 막히지요? 이놈의 도로는 폭삭 꺼져 버려야지…. 그와 대화하고 나면 오물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어렸을 때 사이가 좋지 않은 친척이 있었다.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지만 아웅다웅 많이 다퉜다. 그 친척네는 논이 많았다. 우리는 한 마지기도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 대학을 보낼 거라고 하니 그러신다. 네 아들 대학을 보내? 내 손에~~~.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 친척이 사과했고 나도 받아들였지만, 마음의 상처는 남았다. 술김이라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 또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 말이 많을 것이다. 말 한 사람은 잊어버리고 산다. 내 기억에 없는 걸 보면 모진 말 하지 않았거나 잊어버렸거나다. 잊어버리고 사는 거다!
모든 생각은 보이지 않은 것에서 보이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거나, 하거나, 말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든 생각, 말, 행동은 예외 없이 실제로 현실로 나타난다. 앤 위그모어
호박죽에 새 알 이쁘게 빚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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