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기수
1. 3월이면 입학 선물 분위기가 잔뜩 묻어 나는 가방을 멘 1학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온다. 교문에서 배웅하는 엄마에게 돌아서 손 흔들고 또 돌아서 흔든다. 엄마가 지켜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들어선다. 1주일쯤 지나면 아이는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떠드느라 뒤쫓아 오는 엄마 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2주일이 되면 교문에 붙어 서 있는 엄마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다.
2. 작년, 또래에 비하여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 책가방을 든 아빠가 뒤따라와 교문에 걸 터 서서 가방을 메어 주면 뒤 돌아 손 한번 흔들고 들어섰다. 1학기 내 그렇게 하다 2학기부터는 멀찍이 뒤따라오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계속 혜린이 등굣길에 동행했다.
아빠가 등교시키는 모습이 흔치 않아 한번은 넌지시 물어봤다.
‘혜린이는 날마다 아빠가 가방 들어다 주니 좋겠네.’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다.
‘나도 친구들이랑 오고 싶어요.’
3.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한 기억이 없다. 함께 있어도 조용히 서로의 시간 속에 머물렀다. 어쩌면 성향이 같아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4. 둘째 아들이 대학 진학에 방황할 때 같은 방황을 했다. 꿈꾸었던, 가고 싶었던 길을 가기를 강요했다. 둘째는 자기 길이 있다고 했다. 돌아서 나오는데 아깝고 분했다. 둘째만큼 방황했다.
5. 아버지 학교라는 곳을 갔다.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아버지를 떠 올려 보란다. 두 아들의 아버지인 나를 떠 올려야 할까? 내 아버지를 떠 올려야 하나? 뒤죽박죽 올라왔다.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때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품을 떠나는 자식들, 그런 자식에게 치우치는 배우자. 그럴수록 작아지는 존재감에 더하여 더 이상 자식의 뒷바라지를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술을 찾지 않았을까?
6. 그 옛날 아들이 아파트를 샀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올라오셨을까? 첫 차를 사 몰고 갔을 때 아버지보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두 아들에게만 눈이 가는 장남에게
‘차 번호가 참 좋구나.’
라며 알은체를 하신 심정이 어떠셨을까?
7. 이해되었다.
부끄러웠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아버지를 잊고 살았다는 것이 더 부끄러웠다. 부모니까 무조건 이해해 달라고만 했다.
이기적으로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