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떨어져 있으면 오는 행복 (할머니)

46. 기수

by 재학

인사기록 카드에 외국어능력란을 만나면 머뭇거리곤 했다. 할 수 있는 외국어. 영어, 중국어, 독일어(?), 일본어. 상중하 중 어디에 ○를 해야 하지? 모두 상은 아니다. 중? 자신 없다. 그렇다고 하에 표기하는 것은 꿀리는 기분이 든다. 해서 중간 칸에 ○를 한다. 중간 수준을 구사하냐고? 단연코, naver, 단센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답답함. 막막함, 글자를 모르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안할까? 세상 사는 맛을 절반밖에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 할머니 한글 교실을 운영했다. 그날이 그날인 나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선택한 것은 자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당시는 토요일이 반공일이었다) 같은 시간에 익숙한 얼굴들과 전철역을 오르고, 같은 장소에서 내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시간을 보내다 같은 시간이 되면 언제나 그 술집에서 만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무언가 핑계가 필요했다. 거부할 수 없는 그런 핑계 말이다. 그러려면 학교 밖 활동이어야 했고 마침 그 일이 생긴 거다. 자의다.

타의는 날마다 같은 시간에 후문으로 들어와 정문으로 나가는 한 남자를 알게 되고, 매일 만나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 되어 눈인사가 안부로 변하고 주민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할 의향이 있느냐, 함께 해 보자는 강력한(?) 권유를 받고, 달콤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뛰어들었다. (자의인가?)

처음엔 결혼으로 이주해 온 사람이 드물게 있고, 대부분 인근 의정부, 양주에서 일을 하고 주거비가 저렴한 이 동네로 넘어와 사는 다문화인을 대상으로 개설했다.

‘초대합니다.

대상: 다문화 가족

장소: 주민자치센터.

시간: 19:00~20:00.

연필, 공책, 교재 제공

하루 한 시간, 무료 한글 교실. 우수 강사에게 배우는 한국어’

전단지를 만들고, 교재를 만들어 의욕 가득 개강한 한글 교실. 활짝 열린 문으로 막 쏟아져 들어올 줄 알았다.

개강 첫날 두 명의 여인이 쭈뼛거리며 들어선다. 반갑고 고마워라. 우리말 얼마나 하세요? 읽을 줄은 아세요? 수북이 쌓아 놓은 공책, 연필, 교재를 정성스레 준비한 가방에 담아줬다.

내일은 많이 올 거야.

다음날 두 명

그다음 날도 두 명.

그리고 한 명


결국 아무도 오지 않은 한글 교실이 되었다. 대상으로 설정한 대부분이 불법 체류였음을, 그들을 관공서로 오기를 바란 것이 착오였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수한 강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남자는 계획을 수정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로 대상을 바꿉시다. 그럴까요…? 다시 전단지를 만들고 그가 알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안내하고 마을마다 전봇대마다 붙이며 다녔다. 어떤 날은 함께 다녔고 대부분 그 혼자 열심히 붙였다.

다섯 분의 할머니로 다시 시작한 한글 교실이 열두 분으로 채워지고, 4년 6개월을 즐겁게 운영했다.

5시 퇴근하면 교실에 남아 교재연구를 하며 보내다 어둑해지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주민센터로 갔다. 불이 환이 켜진 강의실에 할머니들이 모여들었고, 배움의 열기로 채우고는 했다. 한 학기를 주민센터에서 수업하다 접근성을 고려하여 학교로 옮겼다.

‘교장선생님, 이런 일이 있는데 제 교실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뭐? 뭐를 한다고?’

‘주민센터에서 할머니 한글 교실을 하고 있습니다. 저 이곳 자치위원이에요(ㅎㅎ).’

‘대단하다. 어찌 그런 훌륭한 생각을 했니?’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겐 저 녀석이 여기까지 와서 점수는 안 챙기고 뭐 하고 다니냐고 하셨다지만 나중엔 운영비도 지원해 주셨다)

좋은 일은 연이어 생긴다. 도 교육청 한글 문해교실에 선정되면서 안정적인 예산이 확보되었고, 간식, 학용품 사고, 무엇보다 에버랜드, 63빌딩, 일산 호수공원 나들이도 다녔다.

함 할머니 그러신다.

‘선생님 이런 세상도 있네요.’


‘11살에 전쟁이 터졌어요. 병석에 누운 어머니가 어서 가라고, 어린 조카 딸려 보냈어요.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흩어져 도망가다 조카를 잃어버리고 혼자 내려왔어요. 신의주에서 남쪽 바닷가 마을까지 걸었지요. 어찌어찌 남자를 만나 딸 둘을 낳아 키우며 다시 올라오다, 어느날 서울에서 조카를 만났는데 사는 형편이 비슷했어요. 고향 가까이 간다고 온 것이 여기까지 왔네요. 허허’

남 할머니 조곤조곤 남 일처럼 말씀하신다.

함 할머니, 남 할머니, 진 할머니, 호 할머니, 주내 할머니, 연정 할머니….

5교시 수업 하다 운동장가에 앉아 교실을 기웃거리는 할머니들을 보면, 유치원 아이들처럼 노란 가방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서는 할머니들을 보며, 선생님 가까이 앉고 싶어 자리다툼 하는 할머니들 덕분에 엄동설한 시기를 따뜻하게 보냈다.

‘종경하는 선생님

오는 길에 글자를 일것어요.

다복 수퍼, 법언 세탁

선생님 존경함니다.’

가끔, 자의든 타의든 내키는 대로 사는 것도 좋다.

참, 당시 경의선 파주역은 논두렁에서 내리고 탔다. 그냥 논두렁이었다. 그걸 이용해 공짜로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불시에 함께 내린 철도청(?) 직원들이 논두렁을 막고 표 검사를 해, 무임승차자에게 몇 배인가를 물리고는 했다. (한 번도 공짜로 타고 다닌 적이 없고 당당히 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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