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기수
시군별로 한 두 학교에서 ‘전통문화 체험학습장’을 운영하던 때가 있었다. 이천은 도자기, 양주는 별산대놀이 등 그 지역 고유문화를 보존‧ 전승하자는 취지다.
파주 전입하여 발령장 수령하고 설렘으로 찾아간 교정 어딘가에서 꽹과리 장단이 울렸다. 보통 북, 장구 등 가죽 악기를 많이 들었는데. 조금 이질적이란 느낌으로 만났다. 태평 십이지 놀이란다.
누군가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게 되었다.
자의는 용인 근무할 때 면사무소 주민센터에서 장구를 배웠다. 출퇴근이 힘들어 부근 마을에서 자취했는데, 도로에 버린 서너 시간이 10분으로 줄어들면서 어마어마한 자유가 주어졌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에버랜드 주변을 뛰기도 하고(당시엔 조깅 문화가 없어 뛸만한 장소가 드물었다) 자취방에 누워 ‘다시’ 무협지를(대학 다닐 때 섭렵했다) 읽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두드리면 열린다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나. 저녁 시간 면사무소에 마을 이장들이 모여 경기농악을 한다는 소릴 들었다. 95%의 불순한(시간 때울) 의도와, 나머지 순수한 마음으로 좀 배울 수 있냐고 끼워 주라고 했다. 명예(?) 이장을 하면 끼워 준댔다. 그렇게 해서 장구를 배웠다.(물론 다년간의 연수로 대부분의 전통 악기 소리를 낼 줄 안다) 자의로 맡게 된 이유다.
타의는 점수(아~ 점수)가 안 되는 것 아무도 하려 들지 않았고, 전입한 네가 해라 해서 맡게 되었다. 착하고 선한 몇몇 사람은 말했다.
‘그걸 왜 해?’
태평 십이지 놀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경기 오악인 감악산에서 국태민안의 제를 지내면서 유래했다고 한다.
12지신을 형상화한 탈을 쓰고 12지신의 동작을 춤으로 형상화한 가락이다. 여느 농악처럼 북, 장구, 꽹과리, 징에 더하여 12지신 동물 깃발을 들고 그 동물처럼 움직임을 했다. 이를테면 호랑이 깃발을 든 아이는 성큼성큼 걷거나 뛰어야 했고, 쥐는 잰걸음으로 걷는다. 덩기덩 깡깡 덩기덩 깡깡 가락에 맞춰 자기 키보다 두 배나 크고 무거운 깃발의 동물 흉내를 낸다는 것은, 가면까지 쓰고서 한다는 것은 보통의 재능과 체력으로 힘들었다. 안 해요 못해요 하는 아이들 많았고, 간식으로 달래고 어르고 애원하며 끌고 갔다.
또 하나 강력한 유인책이 있었다. 야외 공연을 했다. 아이들 도시로 놀러 다니는 것만큼 달콤한 유인책도 없다. 거기에 간식까지 준다. 피자 사줄게. 통닭 먹자. 아이스크림 두 개씩!
거리 상관없이 축제가 있다하면 달려갔다. 토‧일요일 구분 없이 갔다.(열정의 시간이었다) 보리 축제, 도자기 축제, 청계천, 일산, 국립국악원, 안산. 도내 곳곳을 다녔다. 드물게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버스를 운행하는 학교라 수월했다. 기사님을 형님이라 부르며 요일 상관없이 부탁하면 성격 좋은 상형님, 좋지!(늦었지만 고마웠어요)
체험학습장을 운영할 수 있는 버팀목은 전수자 유 선생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 생계 수단인 건축일보다 전수에 매달렸다.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유 선생님께 깊은 감사 드린다.
일산 호수공원은 자주 찾았다. 무더운 여름 다리 아래 그늘에서 장단 소리가 울려 퍼지면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박수도 쳐주었다. 간혹, 드물게 꽹과리 소리가 싫다고 얼굴 찌푸리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유 선생은 더 크게 울리라고 자기 악기부터 부서지라 두들기곤 했다. 3년을 했더니 유 선생님 지각해도 불안하지 않을 만큼 풍월을 읊을 수 있게 되었다.
‘점수 따러 여기까지 와서 뭐 하고 다니는 거야?’
그들은 몰랐을거다. 잠시 떨어져 있으면 더 잘 보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