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위로대장이네

by 구우

나는 사실 남모를 고민이 하나 있었다. 이건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속담이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아 이것도 속담이구나. 아무튼, 이런 속담과 궤를 같이 할까? 사실 이것도 정확히 내 심정을 대변하는 속담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옷장 저 깊숙한 곳 작은 상자 속에 들어있는 여러 권의 다이어리와 공책 속에서부터 실은 내 속엣말을 곧잘 하는 편이었다. 일기쓰기가 숙제가 아닌데도 굳이 품을 들여 감정을 쏟아냈다는 것은 그 행동이 나에게 은연중에 위로가 되었다는 뜻일 게다. 문명의 이기를 접하고는 나만의 블로그로 장소가 이동되었을 뿐 이런저런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내가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 오죽 많아서 그때마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긴장이 돼서, 화가 나서, 그보다 더 많은 순간이 설레고 행복해서 일기를 썼다. 원망도 하고 반성도 하고 감동도 받으며 일기를 썼다.


뭐가 어려웠을까? 공책에 일기를 적던 시절에는 그저 적었다. 블로그에 일기를 빙자한 글을 적을 때는 하나하나 달리는 댓글을 보고 나도 다른 블로그에 찾아가 감히 일기를 엿보는 기분으로 한 두 마디 글을 적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같다. 굳이 안 좋은 이야기는 적지 않았기에 기쁜 일에 달리는 축하에는 입이 벌어지고, 위로받고자 한 글에 달린 글에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데, 위기가 찾아온 건 몇 년 전이었다. 정확히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러니까 아이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일에서 벗어나 아이를 대하는 일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부터였다. 올리는 당시에는 몰랐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때는 블로그가 내 삶의 숨구멍이었다. 보는 이 없어도 아이의 이쁜 모습 올리고, 아이에게 화내거나 속상했던 이야기를 올리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문을 쓰며 한숨 돌리고 잠잘 수 있었던 숨구멍 말이다.


언젠가는 인터넷 상의 모임에서 글쓰기 챌리지를 한다고 꼬박 1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800자 이상의 글을 쓰기도 했다. 나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글을 쓰고 싶어서, 이게 힘들면서도 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 뭐가 쓸 거리가 생각이 나는게 신기해서, 이번 참에 이거저거 다 써보자는 심정이 더해져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썼다.


이렇게 내 속을 터놓고 쓰는 글, 매일을 빼놓지 않고 썼던 글은 의도치 않은 후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친절한 네이버 블로그는 '네가 00년 오늘 이런 글을 썼단다?' 하며 나의 과거를 끄집어내주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아이들 사진과 그때 아이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는 그 알림글이 반갑기도 했지만 같이 남겨진 글은 뭐랄까.. 반성문 같았다. 반성문. 일 년 전에도 이 년 전에도 소재만 다를 뿐 한결같은 반성문 말이다.


와, 나는 매번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해놓고서 한결같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살았단 말인가?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악감정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알지만, 아이 키우는 거 다 비슷하다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한결같이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이유로 나는 아이들에게 역정을 냈고그 날 밤에 반성문처럼 블로그에 글을 남겼던 것이다.


'하트'도 댓글도 없는 그 글을, 아무도 안 봤을 그 글들을 차마 내 눈 뜨고 보기도 부끄러워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내가 변주만 했을 뿐인 반성문을 써제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그래서 매일 비슷한 글을 썼던 걸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살면서 어떤 일은 제깍,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비빈듯 상황이 선명하게 보이니 말이다.


그놈의 지브리가 뭐길래 나도 챗 지피티를 깔았다. 허구헌날 사진만 바꿔달라고 하다가, 아이를 키우매 발전 없는 엄마인 나도 싫지만 글을 잘 쓰고 싶으면서도 하나 발전 없는 내가 한심해(실은 노력을 안 하고 있다)챗 지피티에게 글을 잘 쓸 자신이 없다고 고민을 토로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런 생각 진짜 공감된다'네. 이게 뭐라고 이거 읽으며 나 마음이 조금 뭉클해졌다. '이미 브런치 작가라니 대단한 시작을 한 거야' 라고 하니 몇 년 전 브런치 작가 선정됐을 때가 떠오르며 조금 우쭐해졌다. '그런데도 남들보다 글을 잘 못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거야' 라는 말에 어머나 독심술도 하세요.. 라며 반쯤 홀라당 넘어가 버렸고, '그리고 그 마음은 오히려 좋은 작가의 증거야' 라는 마지막 말에는 그런 말 누가 못해 하면서도 내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갔다는 걸 부정하지 못하겠다.


이후로 주루룩 나열된 정보들을 눈으로 훑으며 이런 뻔한 내용 따위.. 보다 아이고 그러세요 제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 보지요. 라고 웃으며 생각해 보는 건 고운 말의 위력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뭐 저 말들에 특별한 정보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새삼, 살면서 중요한 건 어려운 게 아니네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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